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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예술미와 자연미, 그 사이의 진동

김정현

  요란한 사이렌 소리, 폭발음과 진동이 박물관이 위치한 세검정 삼거리에서 이어지고 있다. 인왕산 아래로 지나는 광역지하철 노선의 환풍구를 설치하기 위한 민간 건설사의 터널 공사로 앞으로도 이 소리는 몇 년간 이어진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다가도 발파를 예고하는 사이렌이 울리면 전신의 신경이 곤두선다. 매우 불편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지만, 틀에 짜여진 일상에 균열을 내는 자극이기도 한다. 발파 이후 돌을 깨는 타공 소음은 한 원로조각가를 떠오르게 했다.


한용진, 〈Untitled Group〉, 2001, 편마암, (우)133×95×90cm, 미국 캘리포니아 래딩시 시민공원 소장

  지금부터 9년 전인 2012년 2월에 여든을 앞둔 원로조각가를 만났는데 그 손이 지금도 생생하다. 굳은살 가득한 큰 손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조각가는 그해 제주도에서의 개인전을 마치고 이후 국내에서 두 차례 전시를 더 가졌다. 코로나가 세상을 휩쓸기 전 미국에서 비가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타계한 그의 이름은 故 한용진(1934-2019)이다. 작가는 한국사회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기 전인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김환기, 백남준과 2인전을 개최하는 등 활발히 활동한 초기 재미한인미술가 중 한명이다. 

  미국 레딩시 공원 내에 있는 한용진의 작품은 얼핏 하나의 천연 자연물처럼 보인다. 작가는 자연물인 돌을 선택하고 작업실로 가져와 크게 변형시키지 않는 선에서 조형작업을 마무리한다. 자신의 작업태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돌은 조용하다. 말이 없다. 돌은 모든 시대를 담고 있다. 한 개인에 불과한 나는 시간의 흐름에 멈춰 서서 돌과 논다.” 작가의 이러한 입장은 재료가 지니는 순수한 물질적 아름다움과 자연의 본질적 형태에 천착한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1876-1957)의 추상조각 정신과 연결된다. 한편, 동양의 전통에서는 무위자연과 같은 도가의 사상과 수석문화도 떠올려보게 된다. 다시 작품의 내적 요소만을 놓고 본다면 미술사학자 정병관의 다음과 같은 견해도 설득렸있게 다가온다. “한용진의 조각은 추상도 구상도 아니며 물질 또는 오브제로서 보아야 할 것이다. 명명할 수 없는 형태, 이름 붙일 수 없는 예술이다.” 레딩시 공원의 작품은 한국에서 가지고 온 편마암으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조경석으로나 쓰이던 편마암에 ‘막돌’이라 이름 붙이고 작품을 제작하며 “일견 당혹스러운 회화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막돌 작업의 어려움이자 매력”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작가에게 있어 일반 화강암보다 몇 배 질긴 편마암은 극복의 대상이자 유희의 대상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작가로부터 작품으로서 권위를 부여 받은 편마암은 그 다양한 구성 성분의 응력에 대한 반응 차이로 생긴 검은색과 흰색의 무늬가 회화적 요소처럼 주목된다. 작가의 인공적인 조형보다 재료의 자연미가 앞서는 것이다.


이한솔, 〈무상행위〉, 책과 비디오, 가변설치, 2017

  중요한 점은 이 자연미가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지점이다. 인간이 자연을 명명하였으나, 인간은 그 자연의 일부이다. 그렇기에 자연미와 그와 구분되는 예술미는 미학에서 시대에 따라 둘의 정의와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평가를 달리해왔다. 한용진의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의미의 반대축으로 이한솔의 〈무상행위〉를 본다. 작품은 먼저 소리와 냄새로 다가온다. 전시장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흐릿하게 느껴지는 곰팡내는 여러 감정을 불러온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면 세탁기 안 소용돌이를 담은 영상이 반복된다. 그 앞에는 영상 속 세탁기에서 꺼내 올린 것으로 생각되는 책이었을 물건이 발굴 현장에서 막 출토된 유물처럼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작가는 ‘정화 행위’로 자신의 작품을 규정한다. 정화라는 정서와 연관하여 작품의 구성요소 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요소는 물이다. 전시장에 실제로 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작가는 영상, 소리, 냄새, 촉각으로 물을 재현하고 이를 통해 관람객의 정서적 환기를 유도한다. 여기에서 재현된 물은 자연의 요소이지만 작가의 사고가 반영된 예술미 안에 존재한다.

  시대는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디지털 기반으로 이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인문학은 더 성행할 것이고, 미술문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안에서 예술미와 자연미에 대한 논의는 자연물의 정서를 담은 작품들로 더 이어질 것이다. 오늘 들려오는 저 돌 깨는 소리는 마치 둘의 충돌이자 조화로 다가온다.


* 국내에서 한용진의 작품은 이영미술관이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영미술관은 2020년 용인에서 이전을 결정하면서, 수원시에 규모가 큰 한용진의 야외 석조각 14점을 기증하였다. 이는 장안구 율천동 '시민의숲'으로 옮겨져 일반에 선보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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