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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미술로 표현된 연대 의식

김정현

최근 국제 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는 분쟁사태 중 특히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사건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많은 예술가가 주목하고 있다. 쿠데타 이전 미얀마 정부는 과거 영국 식민 통치와 그 기간에 이루어진 민족혼합정책, 독립운동 과정에서 성장한 군부에 대한 통제 등 해묵은 과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전하는 과정이었으나, 이번 쿠데타는 이러한 노력을 크게 후퇴시켰다. 쿠데타에 대한 저항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실제적 개입은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에 놓여 요원한 상황이다.



변대용, 〈연결된 금빛〉, 2014, 여행용 가방에 오브제, 90×50×25cm, ‘미얀마의 봄’ 설치 전경

한국도 불과 몇십 년 전 유사한 과정을 거쳤기에 국내에서 연대 의식을 드러내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스페이스사랑농장에서 진행되었던 ‘미얀마의 봄’(4.30-5.30)도 이 중 하나이다. 전시에는 익명의 미얀마 작가들과 한국, 일본, 브라질, 멕시코 작가가 출품하였다. 기획자는 사태의 긴박성으로 새로 창작된 작품이 아니더라도 기존 작품 중에서 이번 기획과 연결될 수 있는 작품은 출품되었다고 밝혔다. 전시장을 둘러보던 중 상패 장식에 쓰이는 금빛 여신상이 어지럽게 매달린 여행용 가방 작품이 마음에 닿았다. 〈연결된 금빛〉은 작가가 미얀마에서의 레지던시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이다. 기성품의 부자연스러운 조합은 불편한 인상을 주는데, 동남아시아를 쉽게 휴양지로 떠올리던 나의 기존인식을 자각하고 그 실상을 더 고민하게 했다. 전시를 둘러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가 미얀마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스통 베르트랑, 〈오스텐드의 등대〉, 1949, 캔버스에 유채, 65×81cm 
ⓒFONDATION GASTON BERTRAND 출처: cornettedesaintcyr.fr

오늘날의 미얀마 후원전시처럼 미술로 한국에 대한 연대 의식을 표명한 전시가 있다. 1952년에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된 ‘백이의현대미술전’(白耳義現代美術展, 1952.11.10-16)이다. 벨기에 작가 6명의 80여 점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벨기에 종군기자 수잔 비바리오의 기획으로 추상미술 작품이 주로 소개되었다. 실상 한국에서 추상미술을 선보인 1세대 화가 김환기, 유영국 등의 활동만으로도 알 수 있듯 추상미술은 당시 한국화단에서 낯선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한 달 뒤 개최된 이 전시는 ‘취지서’에 나타난 것처럼 자유주의 진영의 연대를 상징하는 사회적 의미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출품 작가와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얼개도 있다. 당시 〈오스텐드의 등대〉(Le phare d’Ostende)를 출품한 화가 가스통 베르트랑(Gaston BERTRAND, 1910-94)은 1932년에 군 복무 중 무리한 훈련으로 늑막염을 얻는다. 이로 인해 북해 항구도시 오스텐드에서 요양하게 되는데 이 기간에 그는 많은 연필 스케치를 남겼다. 이후 그가 브뤼셀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한 기록으로 보아 이 시기는 그에게 화가로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기간에 늑막염으로 나치의 강제 노동을 피할 수 있었다. 1949년 40세의 나이로 오스텐드로 돌아온 그는 오랜 시간 머물며 여러 작품을 남긴다. 이 때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던 등대가 재건된 것을 본 경험을 토대로 그린 것이 〈오스텐드의 등대〉이다. 이 작품은 당시 자율적인 형식을 추구한 서구 화단의 기하학적 추상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화면은 회색 톤의 단색과 직선들로 분할되어 엄격한 인상을 준다. 한편으로 작품명을 통해 알 수 있듯 작품에는 구체적 요소와 그로 인해 안내되는 작가의 개인적 서사가 공존한다.

연대의 사전적 정의가 “함께 책임을 짐”이기에 당사자의 문제에 있어 실제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러한 후원전시가 당장에는 공허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긴 시간의 흐름에서 생각한다면, 훗날 미술로 표현된 이 연대 ‘의식’은 누군가에게는 그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떠올리며 성숙한 결정을 이어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아무쪼록 미얀마의 아픔이 속히 종결되길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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