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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떠도는 유령, 난민의 미술

이건형

  그동안 주변부의 일이라 치부되던 난민에 관한 논의와 관심은 최근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건이라는 기폭제에 의해 중심부로 그 축이 이동되었고, 이와 연계된 이슈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난민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정체성에 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동시대 난민들에 대한 배척 혹은 경계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배척과 경계의 기저에는 민족, 문화적 정체성의 상이함이 존재할 것이다. 타집단에 대한 구분과 구획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공동체의 정체성, 이에 대한 일종의 침범행위로 여겨지는 난민들의 등장은 배척과 분열을 야기했다. 특히 제국주의의 붕괴 이후 나타난 포스트 식민주의는 자국 문화의 회복과 새로운 정부 그리고 시민의 정체성 창출이라는 목표하에 정체성 탐색의 도구로 민족적, 지역적 공유 의식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설정값들은 집단 공통의 정체성을 공고히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에서 탈락한 난민들은 이전의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온전히 탈각하지 못한 채, 떠도는 유령과도 같이 정체성이 희미해진 존재로 귀결되었다. 이후 배척과 배제의 대상으로 난민만 존재할 뿐이다.

  들뢰즈의 유목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배척과 배제는 유목민의 전쟁기계가 탈주와 파괴의 결합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사건 혹은 마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경계의 표식일 것이다. 그러나 난민과 유목민을 동일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난민과 유목민은 강제성과 자발성이라는 상이한 기질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찰자들은 대상을 하나의 카테고리화 하여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에 타자인 난민에 대한 배척과 배제의 행위는 결국 이방인 집단의 재영토화 시도에 대한 경계적 태도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시대 미술에서는 이미 민족과 국가의 개념이 점차 무의미해졌으며, 다원주의, 탈구조, 탈중심, 탈민족주의, 제3세력 등 주변부로의 정신적 공유 이동을 경험하였다. 일련의 관심이동에 결부하여 주변부인 난민의 미술에 대한 관심도 확장되었다. 



마우리시 고틀리브, 〈욤 키푸르 유대교 회당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1878, 캔버스에 유채, 245×192cm, 이스라엘텔아비브미술관 소장



소니아 보이스, 〈타잔에서 람보까지〉, 1987, 종이에 사진, 아크릴, 볼펜, 크레용, 펠트펜, 125×360cm,
©소니아 보이스, 테이트갤러리 리버풀

  난민들의 행위는 정체성이라는 지점으로 귀결되는데, 토착영토에서의 정체성과 새로운 영토에서의 정체성의 충돌 혹은 혼합은 정체성 탐색 행위의 기제가 된다. 이러한 난민의 불완전한 정체성에 대한 탐색과 탐구는 미술이라는 어법으로 표현된다. 마우리시 고틀리브(Maurycy Gottlieb, 1856-79)의 작업은 유대교 회당에서 기도하는 유대인을 주제로 한다. 특정 회당에서 기도하는 특정 인종의 표현은 유대인이라는 종교적 난민의 정체성 탐색과 유지를 보여준다. 소니아 보이스(Sonia Boyce, 1962- )의 작업은 정치적 난민,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에 의하여 강제적 난민 지위로 강등된 흑인의 정체성을 보인다. 소니아 보이스는 엄밀히 구분하자면 난민 정체성에 뿌리를 둔 토착민이지만, 작가는 해당 작품에서 백인 지배적 미디어 환경이 제공하는 이미지와 도상을 통하여 정체성의 뿌리에 대해 탐구한다. 더불어 제국주의의 노예제도와 식민지화에 의해 발생한 아프리카 정치적 난민이 흑인의 정체성, 대표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한다.

  작금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모두 담아낸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난민의 목소리와 정체성 탐색에 미술계만큼은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대의 유수를 부정할 수 없듯 이러한 흐름은 언젠간 한국미술계에도 작동될 것이며, 동시에 동시대미술을 형성하는 하나의 요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들 또한 경계의 사이를 헤매는 유령과도 같이 언제나 정체성을 찾아 떠도는 난민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이건형(1993- ) 경기대 서양화·미술경영학 학사. OCI미술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인턴 근무. 현재 김달진미술연구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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