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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이건형

사라지는 것들, 이들은 썩 유쾌하지는 않은 감정을 선사한다. 희미해지는 존재를 붙잡는 것은 열성을 다해야 하기에 그러할 것이다. 목격자들은 기억을 파먹으며 그리다가도 동시에 기억이 소산되며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중적 경험을 하기에, 행위의 주체자는 스스로 사라지며 존재에 대한 복합적 물음을 남기기에 그러하다. 이렇게 사라지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상념을 뒤엉켜 놓는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얻는 양가적 감상, 이 혼돈의 미를 부정할 순 없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이 지닌 그 아름다움을 두려워하며 동시에 예찬하기도 한다.



프란체스카 우드만, 〈무제〉, 엔젤시리즈 중, 1977, 사진, 젤라틴 실버 프린트, 93×93mm, ©찰스 우드만, DACS


프란체스카 우드만(Francesca WOODMAN, 1958-81)은 스스로 사라진다. 그의 작업들은 여타의 자신을 담은 사진들과는 상이하게 자신을 숨긴다. 흑백의 텅 빈 공간 혹은 구조물 속에서 숨거나 가리는 행위를 통해 본인을 지워나간다. 작품의 주체인 자신의 존재를 지워나감으로써 감지되는 상념들은 전통적 자화상의 전복, 자아의 불안정성, 위태로움, 결핍, 정체성, 육체 존재의 의미와 같은 수많은 의문의 매개체가 된다. 동시에 예술 언어로써 선택한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탐구와 기술적 조작을 선보인다. 작가의 엔젤 시리즈 중 작품 <무제>는 주체적 행위로서의 사라짐이 선사하는 다양한 태도와 관념들을 보여준다. 화면 중앙에 위치한 문틀 너머 방안에 두 명의 존재가 있다. 작가는 이들을 관찰점 너머로 위치시켜 문틀을 일종의 액자로 전환하고, 관찰자의 시선을 문틀 사이로 한정시킨다.

좁은 시선의 한계는 폐쇄적, 혼란의 감정을 선사한다. 동시에 좁은 문틀 사이로 보이는 인물들은 불완전한 형상으로 존재한다. 왼편의 인물은 커다란 종이봉투로 전신을 숨기려 하지만, 내부의 희미한 형체가 은연히 노출된다. 가리려 하지만 가려지지 않는 이러한 연출은 이중성, 육체의 존재와 나약함과 같은 복합적 상념을 전이한다. 또한 물체의 외곽선이 흐트러져 있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셔터의 속도를 늦추어 고정된 사진에 동적 움직임을 추가하여 대상의 처지와 행위를 강조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동시에 오른편에 위치한 존재는 네모난 물체 앞에 손을 내밀어 존재의 유무만을 유추하게 한다. 이러한 직접적인 사라짐에 관한 화면 조작은 정체성, 신체의 결핍, 존재의 의문, 회피적 형상, 자아의 불안정성 등 복합적 감상의 전이와 관계 설정을 끌어내는 요체로 작동하게 된다.



구지윤, 〈시니어〉, 2021, 린넨 위에 유채, 290.9×218.2cm, ©구지윤


구지윤 작가는 사라짐의 주체적 행위자가 아닌 목격자로서 작업을 진행한다. 작가는 구축과 해체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적 속성을 함유한 도시에 집중한다. 시간이라는 횡의 축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윤회적 도시와 이를 이루는 건물들은 저마다의 시간의 한계성을 갖는다. 그리고 소멸한다. 작가는 소멸한 것들, 지워진 것과 흔적들에 대해 추억하고 반추한다. 작가의 작품 〈시니어〉는 사라짐 이후에 관한 언어이다.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예찬 그리고 동시에 진행되는 기억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양가적 감성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화면 중앙과 좌측 부분에는 건축 구조물의 형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위로 낮은 채도의 색면이 뒤덮고 있다. 불분명한 색채, 횡과 종의 정서, 날카로운 붓질과 얇은 선의 불안정성, 해체와 결합, 상승과 하강 그리고 이를 침범하는 수평의 정서까지, 화면 안에 위치한 다양한 대조적 구성들과 언어들은 사라진 것들이 갖는 불확실함, 모호함과 이중의 감정들을 야기한다.

이렇듯 지워진 존재 그리고 스스로 사라지는 것들이 선사하는 양가적 감상과 복합적 상념들은 저마다의 어법들로 진행된다. 그런 사라지는 것들은 불가분하게 감상의 흔적을 남긴다. 주체적으로 남기든, 필연적으로 남겨지든 결국 흔적들은 사라진 것들이 남긴 부산물이다. 뒤엉켜진 흔적, 이는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사라지는 것들. 이들이 선사하는 뒤엉켜버린 아름다움을 치워버리는 것도, 풀어 애심으로 묻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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