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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질문으로 찾는 정체성

이건형

정체성의 탐색은 인류의 유구한 수수께끼이자 진리를 찾기 위한 모험이다. 정체성 탐색은 곧 진리에 대한 탐색일 것이고 이는 곧 권력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모든 인류의 숙제이자 과업인 정체성 찾기는 다양한 장르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식을 통해 존재를 탐색한 고대의 철학부터 고갱과 같이 인간 존재와 이를 이루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회화로 표현된 질문법들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또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작가들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자신만의 어법으로 탐구해 왔다. 동시에 그 탐구의 어법과 매개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주되며 확장되었고, 특히 변화된 시대에 맞춰 신체 낯설게 하기 혹은 낯선 환경 속에서의 디아스포라적 태도를 활용한 정체성 탐구와 같은 다양한 갈래로 진행되었다.



론 뮤익, 〈침대에서〉, 2005, 혼합재료, 162×650×395cm, 까르띠에 재단 소장, ©론 뮤익


론 뮤익(Ron MUECK)은 신체를 낯설게 하는 작업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작업은 매우 개인적이며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공통 요소인 은밀한 개인의 감정과 상념들을 자극한다. 작품 〈침대에서〉는 극사실주의로 재현된 거대한 인물상을 선보인다.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의 고독하면서도 복합적 상념들이 뒤엉켜진 표정과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제스처 그리고 텅 빈 공간을 응시하는 인물의 눈빛은 내면의 공허함, 두려움, 불안, 동정심과 같은 인류의 공유되는 원초적 감상을 전달한다. 동시에 존재의 근원적 질문인 탄생, 죽음과 같은 정체성 탐구의 단초를 형성하는 질문들을 이끌어낸다. 특히 가장 개인적 언어인 신체를 극사실주의로 재현한 거대 스케일의 인물은 친숙하면서도 낯선, 일종의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현상을 야기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이지만 인간과도 너무도 흡사한 모습은 관찰자들에게 낯선 경험인 언캐니함을 제공하며 동시에 인물상이 내포한 은밀한 개인적 감정의 상황이 공유되고 전달된다. 이런 낯선 경험을 통해 파생되는 복합적 감상은 관찰자들에게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기원은 무엇인가와 같은 정체성과 존재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서도호, 〈계단-3 〉, 2010, 폴리에스터, 스테인리스 철, 가변설치, ©서도호


신체를 낯설게 하여 제공하는 감상과 더불어 낯선 공간, 문화 속에서의 경험을 통한 정체성 질문 또한 존재한다. 서도호는 집단문화 속에서의 개인의 정체성 위치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치환한다. 작품 〈계단-3〉은 뉴욕의 계단을 폴리에스터천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주체와 공간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끌어낸다. 얇고 연약하고 희미한 기억과도 같이, 투명성을 담보로 하는 그만의 건축물은 개인과 타인, 동양과 서양과 같은 이분법적인 구획을 벗어나 상호 복합적 관계를 형성한다. 상단에서 내려오는 하강의 이미지는 관찰자의 시선을 빈공간으로 이끈다. 뉴욕의 계단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공간은 정체성의 관념들이 엮이는 무의 공간이자 고착되지 않은, 유동적 정체성에 관한 질문의 무대이다. 개인적 공간의 파편을 매개체로 집단문화와 정체성 관계에 대한 탐색, 탐구를 건축적 어법을 통하여 낯설게 혹은 이질적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탐구는 문화와 문화, 문화와 개인과의 긴밀한 관계 설정 속에서의 개인의 정체성 구획과 근거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로 확장된다.

이렇듯 다양한 매개체를 활용한 복합적 질문들은 정체성을 찾는 주된 언어가 된다. 인간 본질에 대한 의문과 그 의문에서 파생되는 개인의 정체성 탐구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는 인류 보편적인 질문일 것이다. 특히 다양한 원인과 방식으로 구현되는 현대의 미술 어법들을 통해 획득하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들은 어느 때보다 보편적 가치의 추구와 인류 정체성 탐색을 필요로 하는 지금, 이 시기의 필수적 요체일 것이다. 예술을 도구로 진행되는 다양한 질문들, 나아가 현재 그리고 동시대의 무수한 어법들로 진행되는 정체성에 관한 저마다의 질문들은 인간인 우리의 숙명이자 과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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