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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진정성의 기원과 두 점의 초기작

김정현

  경쟁 구도의 오디션. 모든 발표가 끝나고 나면 심사위원의 평이 이어진다. “당신의 작품에서 진정성을 느꼈어요.” 승리의 기쁨을 누릴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와 그 무대에 서기 위해 준비하는 이는 생각할 것이다. “무엇이 진정성인가?” 

  “진실하고 참된 성질”이란 사전의 추상적 의미보다 일반적 용례와 결을 같이 하는 단어로 ‘자기진실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아우텐테스(αύθέντης)로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완성한 사람”을 뜻한다, 근대의 자아 개념이 정립되기 전까지 절대자, 지도자에게 주로 사용되었다. 이후 이 단어는 18세기 낭만주의 운동에서 다시 등장한다. 진정성의 사전적 정의에 나오는 진실성, 순수성과 같은 단어에 대해 사회비판이론가 아도르노는 개인에게만 집중하는 실존주의 철학의 추종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은어’라고 비판했다. 아도르노는 진정성을 강조하는 것은 역으로 그 조건을 감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고 진정성의 실천을 방해하는 사회환경적 요인에 주목한다. 그렇기에 이 진정성 개념은 아기의 순진무구함 같은 것과는 구별하여, 한 개인과 사회집단 간의 상호작용을 배경으로 발현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두 작가의 초기작을 보자.


모리츠 폰 슈빈트, 〈마왕〉, 1830년경, 판넬에 유채, 32×45cm, 오스트리아국립벨베데레미술관 소장

  독일 낭만주의 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Moritz von Schwind, 1804-71)의 <마왕>은 괴테의 시 <마왕>을 소재로 하는 그의 초기작이다. 아픈 아들에게 죽음을 속삭이는 마왕과 그 아들을 안고 거칠게 말을 모는 아버지, 아들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많은 작가에 의해 그려진다. 작가 대부분은 전면에 아버지를 형상화하고 거친 바람과 앙상한 나무 등 스산한 풍경으로 마왕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에 비해 슈빈트는 여러 작품에 걸쳐 마왕을 화면 전면에 구체화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형상은 화면의 모퉁이에 표현한다. 슈빈트의 이러한 구성은 그가 ‘마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드러낸다. ‘마왕’의 아버지와 아들은 때론 그 공감 없는 대화로 세대 간의 갈등과 비극으로 해석된다. 이와 달리 슈빈트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그들을 위협하는 환경인 마왕에게 초점을 둔다. 이는 그가 성장기에 고향 빈에서 슈베르트와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내고 본인 역시 바이올리니스트이었던 기록을 볼 때 서사적 요소가 아닌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의 인상을 우선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슈빈트의 옆에는 종교적 관념표현에 치중하던 나사렛화파가 있었다. 그의 고향 빈 출신 화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화파였다. 슈베르트 사후 그를 성공의 땅, 뮌헨으로 안내한 동료도 그 일원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도 그의 독자적 화풍은 평생에 걸쳐 드러나고, 종국에는 나사렛화파의 대표작가이자 미술아카데미 원장 코넬리어스에게 “음악의 즐거움을 회화로 승화시켰다.”라는 평을 받았다.


손장섭, 〈기와인상〉, 1976,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계몽주의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던 낭만주의는 미술에서 형식 존중이 주는 화면의 차가움을 배격한다. 한국 민중미술 운동의 발생원인과 그 조형의 결이 유사하다. 다른 한 초기작을 보자. 균일한 크기의 직사각형들이 화면을 메운다. 이 사각형의 윤곽선과 관계없이 파란색과 녹색, 흰색과 검정이 채도를 달리하며 화면 구석구석을 비집고 들어가 있다. 무심코 보면 한 점의 추상화로 보인다. 손장섭(1941-2021)의 1978년 1회 개인전 출품작으로 제목은 <기와인상>이다. 당시 출품작 13점 중 9점이 이 기와인상이었다. 이 시리즈는 작가가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동인으로서, 1985년 민족미술인협회 초대회장 취임 등 사회적으로 뚜렷한 발언을 했던 시기를 넘어 제5공화국이 막을 내린 1989년까지 그려진다. 당시 가까이에서 함께 활동하던 평론가들에게 이 시리즈는 “추상표현주의적 효과에 대한 집착이 강한 축축하고 두꺼운 회화의 관습적인 흔적 같은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작가의 진정성은 작품으로, 삶으로 표현된 것과 외부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견되어 진다. 슈빈트도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던 손장섭도 사회환경적 요인을 넘어 작품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조형, 서정성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세밀한 결들이 작가와 미술사를 빛나게 한다. 손장섭의 독백은 숱한 고민 속에서도 묵묵히 나아가는 작가의 뒷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 내 그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얼른 설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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