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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미술의 범주에 대한 업무기록

김정현

  최근 업무 중 지난 40여 년간의 국내 일간지에 게재된 미술기사를 정리하는 일이 있다. 전시 개최 소식을 알리는 일반적인 기사부터 전문가의 각주가 붙은 전면 연재칼럼, 새로 발굴된 유적지의 보도사진 한 장까지 그 내용이 다양하다. 양 또한 대형 사건이 없는 때에도 보름이면 100여 장 분량의 스크랩북이 만들어졌으니 아득한 분량이다. 이 아카이브에 여러 사람이 접근해 활용할 수 있도록 보존 대상을 추리고 인물과 사건이라는 대분류를 적용해 목록화하며 실물을 재배열하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작은 손실도 생기기 마련인데, 그럴 때면 아카이브에 대해 자크 데리다가 언급한 “사고로 잃어버린 신체를 현재 없으나 마치 지금도 생생하게 있는 것으로 느끼는” 환각지(幻覺肢) 비유를 체감하게 된다. 비단 환각지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감각은 불완전하고 제한적이다. 초음파와 초저주파는 들을 수 없고 가시광선을 제외한 광선도 볼 수 없다. 불과 몇 초 전의 실재했던 것도 사라지고 나면 당연한 것이지만 느낄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감각만을 의지하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기초로 그 의의를 부여한 또는 감각을 다른 감각과 비교하여 얻는 지각으로 나아간다.


Cherry Jang(류성실) 유튜브, 〈故 체리장 1주기 (희귀영상)〉, 9'29', 2020.10.27


“예술과 작가의 운명은 주위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 미술이 표현에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생명력도 지각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인간의 조건을 반영하는 데에 창의적인 오늘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서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 김영주가 한국일보 1963년 8월 20일 자에 게재한 글 일부이다. 글은 당시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던 형식 논쟁을 넘어 세계에 대한 지각을 강조한다. 감각과 지각이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 온라인 플랫폼에 업로드된 한 영상을 재생해 본다. 작가 류성실의 분신 체리장이 진행하는 1인 인터넷 방송. 출처를 특정하기 어려운 옷차림의 사람이 변조된 목소리로 사이비종교 집회 또는 거짓 뉴스로 들리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낸다. 감각적 연출이 뛰어나다. 보고 있자면 묘한 기시감도 느껴진다. 그런데, 기시감은 즉각적인 감각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각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에 의해 적재적소에 배치된 오늘날의 과잉된 욕망을 은유하는 문화적 기호들이 이러한 과정을 유도한다. 댓글의 내용을 보건대 이를 읽는 이들에게 작품은 하나의 놀이터로 변하거나 정반대로 씁쓸한 풍경이 된다. 이러한 작품 구상에 앞서 선행된 것은 당연히 작가의 관찰과 기록일 것이다. 작가는 어떠한 범주로 저 기호이자 이미지, 기록을 관리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 범주는 작가에게 있어 오늘에 대한 지각의 범주이자 다가올 내일의 기획안일 것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웹드라마 〈선인장이 자라는 박물관〉 스틸컷


  처음 언급한 업무와 함께 지난 5월 말까지 업무시간의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있다. 한국박물관협회 ‘사립박물관·미술관 온라인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을 통한 웹드라마 제작이다. 두 업무를 진행하면서 실무연수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미술기사 분류 작업의 경우, 1차 실물 분류 진행과 함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분류기준안과 활용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받았다. 웹드라마 제작의 경우는 더욱 비중이 컸다. 사실 지원 사업 공모를 위해 기획안을 작성하기 시작할 때 인터뷰 영상과 같은 평이한 콘텐츠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심드렁해지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한 연수생이 내게 웹드라마를 소개해주며 초기 대본 작성도 도움을 주어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미술의 범주에 대한 견해차였다. 무형의 개념도 미술인 시대. 이미 오래 전에 허물어진 경계에서 “왜 이 기사는 보존하지 않는지”, “왜 이런 장면은 들어가면 안 되는지”를 상대적 기준을 경우별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새로운 경우가 나오면 상대적 기준은 바뀌기 마련. 설명하다 보면 움츠러들거나 격정적인 모습으로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이제는 범주에 대한 견해차를 흥미로운 주제로 기록하려고 한다. 그것이 나와 상대가 우리 박물관을 통해 얻은 불완전한 미술에 대한 이상향으로서의 환각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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