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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아트 오브 도플갱어 윤진섭

안효례

<종이와 물>, ‘이건용·윤진섭 2인 이벤트 《조용한 미소》’, 1977.9.17, 서울화랑.


온라인 게임에서 쓰던 ‘본캐’, ‘부캐’라는 말은 이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자신’ 외에 별도 관심사나 활동을 다른 인물로 인식, 활용하는 것이 여러 세대로 확장된 것이다. 경계를 허물고 포옹하는 풍경이 충격·파격인 시대를 지나 일상이 됐다. 작가 혹은 미술평론가, 기획자, 교육자. 한 단어로는 설명이 부족한 윤진섭은, 그런 면에서 늘 앞서 있는 예술 생산자다. 자신을 크리큐라티스트(크리틱+큐레이터+아티스트)라고 소개해왔던 그에게 지금의 세상은, 이미 50여 년 전부터 현재 진행형이다.


<태·동(胎·動)>, ‘1986, 여기는 한국전’, 1986.5.4, 대학로.


70년대 한국 전위미술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ST 회원으로 활동한 그는, 탈 장르적 성격의 한국 실험미술을 이끌었다. 80년대 말 작가들과 협업으로 탄생시킨 퍼포먼스 아트를 ‘행위예술’로 명명하고 그 개념을 규정했으며, ‘한국행위예술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왕치, 한큐, 소소 등, 80여 개의 예명을 사용하여 창작해왔다.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도플갱어(Doppelgänger)라는 부제는, 그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적절해 보인다. 자기 소설에 적극 사용하며 도플갱어라는 말을 널리 알린 에른스트 호프만처럼, ‘크리큐라티스트’라는 소개와 많은 예명을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그다. 역동적이고 열린 정체성을 지니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써의 인간상을, 그는 뚜렷하게 표현해 온 것이다. 안소현 미술평론가는 분신술 놀이로 그를 설명한다. 분신술을 통해 정체를 지우고 다양한 분신으로 분열할 수 있지만, 다시 하나의 본체로 수렴할 수도 있다. 미술 창작 활동으로 시작했으나 비평 활동과 전시 기획·교육 활동을 더 활발하게 이어가던 그는, 다시 회화와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김복기 아트인컬쳐 대표/경기대 교수는 최근 작업을 보며 오래전 벽에서 넘실대던 윤진섭의 드로잉을 떠올려 소환해 설명한다. 예술이라기엔 너무 평범해서 일상인지 예술인지 구분되지 않는, 예술이 아닌 척하는 행위예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재료들과 기본적인 미술도구들. 10여 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왕성한 무명 작가 행세. 윤진섭의 퍼포먼스 예술을 분석한 조수진 미술사학자는 그를 ‘부드러운 반죽’ 같은 예술가로 설명한다.


<끝없는 욕망>, ‘평화의 제(祭)-장벽을 넘어서’, 1988.12.12, 주한 독일 문화원.


이 책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2021년 열린 전시의 연장선에 있다. 작품과 아카이브, 전시 기간에 이어진 퍼포먼스를 기록·공유하기 위한 ‘아카이브’이다. 글을 읽고 작품을 감상해도 좋고, 반대도 좋다. 시간을 거슬러 아카이브를 먼저 봐도 좋고, 책을 덮고 그의 SNS에서 자유로운 감상과 동조를 더해도 좋다. 윤진섭의 연구 활동과 재기 넘치는 창작 활동은 끝이 아니기에, 우리는 변화무쌍한 순서로 그의 작업을 즐길 수 있다. SNS를 넘어 메타버스까지 폭발적인 실시간 활동과 관계 맺기가 가능한 지금, 언제나 자유롭고 비장하지 않은 놀이형 행위예술을 지향했던 것은 바로 윤진섭 그였기 때문이다.


(좌) <의적 일지매>, ‘제8회 실험예술제’, 2009.9.11, 홍익대학교 앞 피카소 거리.
(우) <한 송이 꽃은 한 송이 꽃이고 한 송이 꽃이고 한 송이 꽃이고...>,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특별전’, 2017.9.24, 코엑스(CO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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