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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약(Pills)에 담긴 인류의 욕망

편집부


네모심장T 120×85cm Pigment-based Inkjet on cotton paper 2023 (부분)


PiLLS
김승환
2023.3.22-4.7
충무로갤러리
chungmurogallery.com



존재의 가치를 깨달을 새도 없이 인간의 힘에 의해 살해된 생명을 연민하고, 공간이 주는 단절과 차별, 그 이기적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해, 동물 실험 현장의 흔적을 초상으로 남긴 작업을 선보였던 ‘초상이 된 공간’(2017.6.13-6.19, 사이아트스페이스) 전시 이후, 김승환 작가는 알약(Pills)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메시지와 이미지의 변주
생명 현상은 화학적인 반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모든 생체 세포와 조직 또는 생물의 생활 기능은 무수한 화학반응 체계로 구성되어 있고, 약은 세포의 생활 반응에 직접 관여하여 구조와 기능을 개선하는 화학물질이다. 이러한 약은 인간의 생명 연장과 안락한 삶이라는 욕망을 직접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질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치유의 약을 욕망의 크기와 더불어 그 용도를 확대시켜 나갔고, 결국은 축복이었던 그 쓰임새를 치유와 중독이라는 양날의 칼로 탈바꿈 시켜놓았다. 그 중독은 타인의 시선을 항상 염두에 두며 사회적 통념이 요구하는 대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숨 막히는 현실의 탈출구를 중독을 통해 찾아내려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작품은 우리가 먹는 알약 캡슐(Pill)을 촬영한 이미지다. 작품에서 알약은 수많은 인간 군상이기도 하며,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Cell)이기도 하다. 하나하나의 알약들이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졌지만, 태어난 인간이 제각각의 품성을 가지는 것처럼 시간과 조건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간다.

부드럽고 포근하며 화려한 색상으로 욕망을 꿈꾸고, 숨 막히게 옥죄어 오는 현실은 까맣게 불타버린 모습으로 대변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 이면에 따라오는 또 다른 모습을 수만 개의 알약으로 배열하여 구상하고, 그것을 변형시켜 가는 모습으로 추상하여 표현하였다.



#02-PILL EA78 - 180×148cm, 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 2017


Oort cloud, 59×42cm


spin-off
작업은 조그마한 호스피스 병실에서 형형색색의 알약(Pill)을 한 움큼 쥐어 들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비극은 체험을 통해 인간을 체념으로 끌어내려 생존의 의미를 무력화하려 한다. 이제는 무수한 시간이 흘러 그 체험이 무뎌질 때도 되었건만, 어머니께서 삼키지 못해 침대 보 위로 굴러떨어진 빨간 알약과 구겨진 비닐 조각의 모습은 내 눈앞에 그대로 멈춰있다.

이미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이나, 표현할 수 없는 심상에서부터 가시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사물들까지 포함하여 이르는 광범위한 개념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사진 이미지는 재현된 현상을 포착하여 이미지화하는 것이지만, Pill spin-off는 현상의 포착보다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표현에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시각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감정 상태에 따라 달리 각인되는 Pill의 반영적 모습을 단순 미메시스[mimēsis]에 그치지 않고 추상한 작업이다.

오랫동안 물리적 외형에서 치유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면 이제는 그 형상을 차츰 지워내고 매몰되었던 내부에서 새로이 작업을 시작한다. 대상의 형태에 집착하지 않고, 기억의 재현보다 의식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감정을 끌어내 마음 속 치유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


네모 심장
우리는 어딘가에서 오는 통증이나 말초신경의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 돼서야 자신의 육체를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하얀 사각의 방 안에서 탈출하려 몸부림치고 나서야 뜯겨나간 통증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돌아볼 수 있었다.

과거를 감싸는 껍데기에 대한 묘사에 의존했던 순간에서 껍질을 뚫고 나와 거울에 비춰진 나의 심장을 들여다본다. 제각각 뜯겨진 그것들의 모습은 변화의 결과를 옳고 그름으로 논하지 않고 탈출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각의 흰색틀은 더 이상 우리를 감싸고 있는 현실의 공간이 아니다. 내게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네모난 요람이다.

틀에서 빠져나온 심장은 묵직하게 원색적 자취를 남긴다. 거울에 비쳐 사면으로 분절된 심장의 흔적은 거울 너머에서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그 시간 동안의 고통을 흐릿하게 상기시킨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의 실재(實在)는 흐릿해질 것이고 뇌리의 이미지는 실제(實際)의 대상보다 오래 각인될 것이다.

작가는 표현에 있어서 무제한적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시간의 한 켜를 평면에 못박아 고정시킨 이미지로 창작된 결과물에서 형태와 소재 그리고 형식의 전이를 통해 평면을 독립시키고 대상을 실재(實在)로 연장시켜, 창작의 의미를 가지런히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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