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나의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

김영호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언어로 표현한다. 눈(眼)·귀(耳)·코(鼻)·입(舌)·피부(身)라는 다섯 감각기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시 외부로 드러내는 도구가 언어다. 내가 만들어가는 세계는 나의 오관(五官)에 의해 감각된 세계이며 나의 언어에 의해 규정된 세계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우리가 사유하는 현실은 언어로 짜여진 세계일 뿐이다’라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보다 앞선 오스트리아의 언어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말하며 언어의 불완전성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만들어가는 현실은 말과 글로 짜여진 세계일 뿐이며 이때 말과 글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를 만들어낸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기서 역설적인 질문이 생겨난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세계란 없는 세계인가?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다섯 감각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지각 경험이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존재하지 않는 세계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나의 피부에 스치는 바람이나 귓전을 가르는 벌의 날갯짓 소리 혹은 망막에 들어온 장미의 붉은색이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해도 엄연히 존재한다. 느끼지 못한다 해서 없는 것은 아니며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는 것 또한 아니다.

인간의 감각기관 자체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세계는 많다. 가령 인간의 눈은 400-700nm의 파장을 지닌 가시광선 외에 빛을 보지 못하며 인간의 귀는 20-20,000Hz의 가청주파수의 소리만을 들을 수 있다. 인간은 부엉이나 벌 그리고 돌고래가 보고 듣는 세상을 모두 경험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감각작용이나 인식작용의 밖에 있다 하더라도 존재하는 세계는 얼마든지 널려있다.



제라르 드 래레스, 오감의 알레고리, 1668, 캔버스에 유채
ⓒ Glasgow Museum, Glasgow


이렇듯 언어의 한계에 대한 성찰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속되어 왔다. 앞서 언급한 라캉이나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한 언어적 세계론과 언어의 한계론은 기원전을 살았던 노자가 도덕경에서 설파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의 가르침을 떠오르게한다.

이제 우리는 미술의 언어학에 대해 말할 차례다. 미술의 역사는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의 역사였다. 미술가들은 자신의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세상을 자신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표상해 왔다. 오관으로 받아들인 세계를 조형언어를 통해 표상하는 일은 미술가들에게 주어진 소명이었다. 인간이 도구를 발명한 이래 시간과 지역에 따라 화가와 조각가들은 저마다 고유한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양한 조형 방식을 개발하며 변화시켜 왔다. 미술의 역사는 조형언어의 경계를 확장시켜온 역사였다.

언어의 경계 확장은 오관을 통한 인간의 지각작용과 인식작용의 경계를 확장하는 노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 경계 확장의 노력은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와 현대의 문화를 만들어내었고 인간의 삶을 더욱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18세기에 등장한 미학이 남긴 성과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은 저녁노을보다 저녁노을을 그린 그림이 더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며 예술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높여주었다. 그 이유는 그림 속의 노을은 정신으로 태어난 노을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일은 근대를 넘어 현대를 사는 오늘의 미술가들에게 여전히 주어진 과제로 남겨져 있다. 그리고 현대미술에서 사용되는 오브제나 설치 그리고 뉴미디어 따위의 어법들은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보다 확장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노력은 기존의 윤리와 관습과 제도로 짜여진 기만적 현실의 굴레를 넘어 감각적 현실의 또 다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소망의 산물일 것이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우리에게 여전히 남겨진 과제라는 생각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