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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팝(pop)에 대하여

오광수

이번 시즌의 전시 가운데 <7인의 팝파티>(갤러리선컨템포러리), <후 아 유 Who are you?>(금호미술관), <차도살인지계>(카이스화랑), <사춘기 징후>(로댕갤러리),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일민미술관)은 우연히도 대중문화에 밀착된 젊은 세대의 또 하나의 예술적 유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켰다. 다섯 개의 전시가 각각 다른 기획자에 의한 다른 콘텐츠를 지니면서도 공통된 유대감이 생겨나고 있어 분명 새로운 바람으로 간주하기에 충분하다. 이를 편의적으로 한국적 팝이라고 명명하여 보았다. 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풍미한 팝아트의 영향을 새삼스럽게 받아드린 것도 아닌데 팝아트가 지닌 속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후기 팝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으며 한국이란 특수한 지역성을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적 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 젊은 작가들의 팝 성향
일찍이 해밀턴은 팝아트를 언급하면서 “일시적이고 소모적이며 싸구려이고 대량생산된, 그리고 젊고 위트에 풍부하며 섹시하고 속임수가 승한” 특성을 들었다. 한국적 팝에도 이런 속성들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다. 대량생산 체계에 폭발하는 대량소비의 욕구가 만연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적 상황이다. 젊은 세대들은 유치함을 자랑하며 동시에 유머러스한 감각이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기성문화를 살짝 비트는 속임수의 기법도 능란하다. 대중문화에 뿌리 두고 있다는 점에서 팝아트와 정신적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다. 주로 20, 30대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이 물결은 어느 듯 현대미술의 가장 젊은 층의 상당 부분을 점하고 있어 조만간 주류로서 부상할 조짐도 없지 않아 보인다. 모더니즘 세대와 민중미술 세대를 비껴난 또 하나의 물결이 거대한 물마루를 형성해가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전 세대가 겪은 전쟁, 이데올로기. 민주화와 같은 치열한 투쟁과 격정의 계절에서 벗어난 풍요로운 사회에서 자라난 세대이다. 그러기에 전 세대의 교조적이고 이념적인 또는 순수 지향적인 기성의 가치에 전혀 물들지 않은 세대이다. 이 점에선 어디에도 맥락 되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를 가꿀려는 의지가 팽배하다. 그럼에도 아직 완벽한 자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전 세대의 집단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정신적 탈주를 시도한 이들은 본질적으로 부모세대(기성세대)와 싸우는 반항아이고 홀로 외로움에 맞서야하는 이방인이며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자문해야하는 정체성 위기의 세대”(안소영)임에 틀림없다.
이들의 작품에서 빈번히 발견되는 것은 대중적 아이콘, 만화, 인형, 영화의 캐릭터등이며 옛 동양화나 민화를 대상으로 패러디하거나 인터렉티브 설치를 통한 혼성 이미지가 빈번히 출몰한다. 익살과 키치풍이 뒤범벅이 되는가 하면 소비사회의 갖가지 공산품이 오브제로 활용된다. 무차별적이고 무가치적이며 작품의 유물적 가치를 비웃는다. 익명성에 익숙하여 굳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몇몇 전시에선 젊은 세대만이 아닌 약간의 기성세대도 초대되고 있다. 예컨대 김홍주, 엄정순, 문범, 이왈종, 김근중 같은 이들이다. 이들이 초대된 것은 이들 작품 속에 부분적으로 감지되는 팝적 요소에 이끌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니까 한국적 팝에도 그 나름의 원조가 있다는 것을 맥락화해 보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런 각도에서라면 최정화야 말로 한국적 팝의 원조라고 할만하다. 그가 기획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에 나온 오브제들은 세계 여라 나라에서 수집해온 공산품 - 총 천연색의 플라스틱 제품 - 과 마네킹, 폐교에서 가져온 동상, 갖가지 생활용품,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뒤엉켜 있는 형국이다. “생활이 곧 미술인 그에게는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란 미술관 측의 언급은 한국적 팝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 담보해주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미 우리 속에 풍부한 팝적 요소가 산재해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전시를 보면서 또 하나 느낀 점. 최근 밀려오는 중국의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팝적 요소에 자극받은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동양문화의 아이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기성문화를 비트는 시니컬한 비판적 요소가 서구인들의 이국적 취향을 자극하면서 그 나름의 파워를 키워가고 있는 현상에 너무 휘말려들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왕 한국적 팝이라면 한국적 팝의 특징을 확대하고 심화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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