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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전시서문과 주례사

오광수

전시 카탈로그 서두에 실린 전시 서문을 두고 주례사라고 일컫는다. 결혼식의 주례사에 빗되어 하는 말이다. 신랑, 신부의 새 삶에 대한 당부와 격려가 곁 드리는 내용이 주례사임을 감안할 때 왜 전시 서문이 주례사인가는 얼른 이해가 안 간다. 물론 전시를 여는 작가를 위한 격려와 당부의 언급이 없을 수 없으나 중심 내용은 작가를 소개하고 작가의 작품세계를 해설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상과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단순한 주례사로 폄하해서 부른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서문이 지나치게 미사여구로 장식되어 있거나 칭찬 일번도로 인해 오히려 보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서문을 아예 주례사로 묶어 치부해버리는 일은 소아병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서문은 작가의 세계와 작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혀줌으로써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처럼 난해한 미술양식인 경우, 감상의 안내는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형식의 서문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 어디에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서문을 통해 작품에 접근하게 되고 작품의 이해에 도움을 받는다. 서문을 읽고서야 제대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물론 전시서문을 본격적인 비평의 영역으로 보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가벼운 작가론일 수도 있고 단순한 해설서로 볼 수도 있다. 그것을 굳이 본격적인 비평의 영역에 맞추어 보려는 데서 오해가 생기게 된다. 서문 가운데는 훌륭한 작가론에 준하는 것들도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전시서문에 작가의 세계를 신랄하게 비평한다는 것은 작가를 소개한다는 원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작가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받은 서문을 게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 자신을 비난하는 내용이라면 누가 게재하겠는가. 비평문이란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말미에 비판적인 터치를 일부로 넣는 경우도 보게 되는데 이 역시 구차하게 보인다.
자칭, 타칭의 미술평론가
전시 서문과 관련해서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자칭, 타칭의 미술평론가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전시 서문 한두 편 쓰고는 바로 미술평론가로 둔갑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자칭 뿐 만 아니라 미술저널이 미술평론가란 타이틀을 남발하는 경우도 목격된다. 비평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비평가가 된다면 오랜 세월을 거쳐 비평가로서의 입문에 고심해온 사람들과 일정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해온 비평가들은 무어란 말인가. 이웃 영역인 문학만 하더라도 그것이 비록 삼류 문학지라도 일단 등단의 관문을 통과해야지만 시인, 수필가, 평론가의 타이틀이 붙게 된다. 창작의 경우, 프로와 아마추어가 구분될 수 있으나 아마추어 비평가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다. 가치판단을 아마추어 수준으로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은 전문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아마추어 의사가 존재하지 않듯이 아마추어 비평가가 존재할 수 없다. 자칭, 타칭의 비평가들이 내놓는 글들이 때로 현학적이거나 요란한 수사로 얼버무려진 것들이 적지 않은 편인데 작품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 내용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에 따른 피해를 입을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료로서의 카탈로그
전시서문과 관련된 또 하나 언급해두고 싶은 것은 작가들이 카탈로그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갖자는 것이다. 자료로서의 내용과 가치를 지니지 않을 경우 열이면 열 휴지통에 버려진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만든 카탈로그가 이렇게 버려지는 일이 안타깝다. 훌륭한 자료로서 남지 않을 것이면 간단한 엽서 한 장이면 족하다. 엽서로서 전시를 알리고 제대로 된 카탈로그는 화집에 준하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카탈로그만 보아도 그 작가의 의식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촌스럽기 짝이 없는 카탈로그는 작가의 정성을 아무리 감안한다 해도 휴지통행을 면할 수 없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제대로 되어야 우리미술 수준이 한 단계 업그래이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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