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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예술과 석물조각

오광수

박수근의 작품이 소박하다고 말해지는 것은 그림의 내용이 주로 서민생활의 단면을 묘출하고 있기 때문에서 뿐만 아니라 기법에서 유래되는 독특한 정감의 형성에서 기인된다고 할 수 있다. 박수근은 초기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소재상에서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단색조에 가까운 절제된 색채감정과 투박한 안료층에 의한 특이한 기법의 천착으로 자신의 양식을 완성하였다. 가난한 농촌의 생활정경과 변두리 도시서민의 애환 짙은 모습을 담은 그의 소재의 일관성은 가장 서민적인 작가 또는 가장 토속적인 작가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화면은 마치 흙벽과 같은 갈색조로 뒤덮히면서 대상은 검은 윤곽으로 처리되는 초기의 작품은 50년대 후반에서 작고하는 6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기름기가 걸려 지면서 화강암의 표면을 연상시키는 건삽한 질료에 도달되고 있다.
박수근은 주지하는 바대로 미술학교를 거치지 않은 채 독학으로 자기세계를 일군 작가이다. 그러기에 미술학교를 통한 제도적, 관성적 내용이니 방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일찍이 자기 세계의 완성에로 이를 수 있었다. 독학파의 대부분도 제도적인 영역에 편승하려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 비하면 박수근은 어느 누구의 방법이나 양식의 영향을 받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이점에서야 말로 그를 어떤 경향이나 유파에도 편입시킬 수 없게 하며 가장 개성적인 작가로 손꼽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박수근은 소년기인 18세에 농촌 풍경을 수채화로 그려 <조선미술전람회>(32년)에 첫 입선하였다. 이후 36년에서 43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입선하여 화가로서의 길에 들어섰다. 이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의 내용은 농촌풍경이 아니면 농가에서 일하는 여인의 모습(맷돌질하는 여인, 절구질하는 여인, 나물캐는 여인들)으로 일관되고 있다. 일하는 여인들이 중심이 되면서 때로 풍경이 점경되는 내용은 이후 50년대와 6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방 전 초기의 내용이 주로 농가의 정경, 농촌의 삶을 모티프로 한 것이라면 해방이후 50년대부터는 도시 변두리 서민들의 삶의 양상이 중심이 되고 있다. 시장에서 노점상을 벌이는 여인네들과 길바닥에 모여앉아 한담에 여념이 없는 중노의 남정네들의 모습이 주로 담겨진다. 색채는 극도로 절제되면서도 때로 여인네들의 치마저고리나 아이들의 옷에 엷게 입혀지는 수준이다. 인물이나 바닥이 거의 하나의 톤으로 전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듯한 사물과 바탕이 일체되는 느낌이다. 후반기를 가면서 화면은 점차 화강암의 표면처럼 거칠면서도 건삽한 마티엘로 뒤덮힌다. 안료를 겹겹이 발라올리면서 단층을 만들어가는 독특한 화면조성이다. 초기나 50년대 전반까지의 작품에서 보이는 평면화에서 벗어나 화면이 구조화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수근의 작품이 내용적인 면에서 소박한 서민들의 삶의 양상을 모티프로한 것이 50년대 전반까지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50년대 후반에서 65년까지의 작품은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방법적인 측면에서도 소박한 정서의 양식화에 도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화면에 얽혀드는 질료의 단층은 마치 오랜 화강암석물의 표면을 연상케 하는 질박한 것으로 표상되었다. 오랜 풍상에 마모되어 흐릿한 선각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석물(석상, 석비 등)을 앞에 하고 있는 느낌이어서 더욱 푸근한 친숙감을 안겨주고 있다. 안료를 칠하고 마른 다음 다시 칠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안료가 쌓아올려지면서 붓자국의 사이사이에 작은 기포등이 생겨나 영락없는 화강암 돌팍의 작은 돌기현상을 보는 느낌이다. 이렇게 안료의 층을 만들어가면서 이미지를 서술해야하니까 자연 각인을 하듯 예리한 선각이 이루어지게 된다. 50년대 후반부터 65년까지 이어지는 후기의 작품들이 한결 이미지의 표상이 투박하게 나타나는가하면, 암벽을 쪼아 이미지를 드러내는 암각화와 같이 예리한 선조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때로는 표면의 질료와 이미지가 선명하게 구별되지 않고 뒤섞이는 형국을 보이기도 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정한 질료의 전면화로 나타나는 추상화를 보는 느낌이다. <비둘기><농악> 등 작품에서 특히 이런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 신세계화랑의 박수근전은 단순히 박수근의 작품을 진열하는 평면적 구성이 아니라 조선시대 석물조각을 대비시키는 입체적 전시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진열방법은 그의 작품의 영감원이 어디에서 온것인가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것으로 다분히 교육적 의도를 함유하고 있다. 작가는 평소에 우리의 들녘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옛석물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노라고 했다. 작가의 이 말은 우리의 자연속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자신의 예술은 태어났다는 사실을 천명해준 것이다. 그의 작품이 소박하다는 것은 이처럼 꾸미지 않는 우리의 정서를 조형화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석물의 표면이 보여주는 투박한 질감이나 각화된 선조의 이미지들은 박수근의 화면질감과 그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과 너무도 상응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기교적이지 않는 고졸한 미감은 박수근의 화면에서 보는 소박한 정감과 그대로 상통된다. 박수근 예술이 처음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선호되었다는 것은 그의 예술이 지닌 전통적 미감의 항상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애착을 받는 것도 전통적 미감이 환기하는 고유한 정서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전시로 끝나지 않고 박수근의 작품을 체험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모작을 제작하고 손으로 더듬어 그 특유의 질감을 이해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실지로 손으로 더듬어 박수근의 작품과 석물이 어떻게 공통되는가를 느끼게 하였으며 종이찰흙판 위에 박수근 작품의 질감을 재현하여 스탬프로 각자의 작품을 만들게 한 점은 한 예술가의 세계를 더욱 깊게 이해하게 할뿐 아니라 예술가의 작업과정을 추체험케 하는 다시없는 기회로 보인다.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결과된 작품, 완성된 작품만을 시각적으로 향수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제작과정에 대한 추체험, 질료의 형성에 대한 보다 기술적인 접근은 예술작품을 더욱 깊게 보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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