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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큐레이터는 유목민인가

오광수

오광수 미술칼럼(59)




큐레이터의 이동이 심하다. 이 미술관, 저 미술관으로 떠도는 큐레이터가 적지 않다. 큐레이터를 정규직으로 뽑지 않고 계약직으로 뽑기 때문이다. 일정계약기간을 끝내면 자리를 물러나야 한다. 또 다른 미술관이나 관계 직장에줄을 서야한다. 과거엔 큐레이터가 정규직으로 선발되었다. 국·공립박물관, 미술관이 학예직 선발을 계약제로 바꾼 것은 2000년 중반경부터가 아닌가본다.
물론 학예직이 아닌 다른 직종에도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전문 직종인 큐레이터는 일반직과는 다르다. 큐레이터를 계약직으로 선발하는 제도에 대한 가장 큰 허점은 제대로 된 인재양성을 할 수 없다는데 있다.
큐레이터는 전문직이고 그것도 고도의 전문직종에 속한다. 이들을 임시직으로 선발한다는것은 아예 전문성을 배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큐레이터가 매력적인 직종으로 부상된 것은 70년대 이후 현대적 성격의 미술관 활동이 전에 없이 활기를 띠면서 이곳에 종사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알려지면서였다. 큐레이터가 매력적인 직종이란 것은 다른 직종에선 누릴 수 없는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이 담보된다는데 있다. 독립된 전문가로서 자기 영역에 집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창조적인 작업에 자신을 투자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기에 일정한 자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지속적인 연구작업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시켜주지 않으면 안 된다. 2년이나 3년 만에 자리를 물러나야 한다면 지속적인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
겠는가.계약직으로는 연구자로 성장이 어렵다
그의 연구영역이 현대미술이라면 수많은 현대 작품 속에 파묻히거나 많은 현역 작가들을 만나거나 부지런히 전시장을 돌아 다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밖에서 보기엔 선망의 적이 될 만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막상 큐레이터의 업무를 들여다보면 결코 만만한 직종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큐레이터의 자격요건은 폭넓은 문화예술의 소양은 물론이려니와 자기분야에 대해선 높은 지식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적어도 두세 개의 외국어는 구사 할 줄 알아야 하고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고 한다. 센스가 있고 멋쟁이이며 흔치 않는 직관력의 소유자여야 한다고들 한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부자집 자녀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 큐레이터는 매력적인 직종이지만 동시에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말도 있다. 큐레이터는 청소부에서부터 사장에 이르는 폭 넓은 일을 처리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전시될 작품을 벽에 걸기 위해 못질도 해야 하며 전시장 청소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전시장을 찾아오는 VIP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야하며 작가들 아틀리에도 부지런히 찾아다녀야 한다. 그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면서 현장의 정보도 수집해야하며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구상의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어야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계약직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계약직이란 임시직에서 어떻게 이런 임무와 역할을 수행 할 수가 있겠는가. 곧 옮겨가야 하는 불안한 상황에서 제대로 연구가 될 수 있겠는가. 날로 이 방면에 진출하는 신진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제도적으로 연구직의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목초나 물이 있는 지역을 향해 떠도는 유목민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을 유목민에서 구출해 줄 수 있는 방도는 정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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