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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정창섭과 김동수

오광수

오광수 미술칼럼(64)

두 사람의 미술가가 세상을 떠났다. 정창섭(1927-2011.02), 김동수(1935-2011.03) 화백이다. 정창섭 화백은 이른바 해방 후 제1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다. 해방 후 1세대란 해방이 되면서 세워진 미술대학(서울대, 이화여대, 홍익대)에서 배우고 나온 첫 세대를 가리킨다. 우리 손에 의해 길러진 첫 세대란 의미를 지닌다. 그는 모교인 서울대 미대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생각이나 활동에 있어 조용하면서도 반듯한 면모를 보여주어 미술계의 신사로 통했다. 그의 이런 면모와는 달리, 자기세계에 대해서는 치열한 작가의식을 보여주었다.




정창섭, 닥 작업은 고향으로의 회귀
그는 누구보다도 일찍이 한지의 조형화에 힘을 쏟았다. 한지의 발견과 조형의 가능성이란 80년대 초반 현대미술의 기운과는 일정한 거리를 지니면서 자신의 독자한 방법을 천착해나갔다. 캔버스란 지지체에 한지를 부착한 작업은 아마도 그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아닌가 본다. 한지의 가장자리에 수묵의 묵흔을 남긴 작업은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이 8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는 한지의 원료인 닥의 조형화(삶아 물렁물렁해진 섬유질을 주물러 반죽하고 그것을 준비된 판 위에 펼쳐 두드리는)로 발전되었다. 닥의 원액의 조형화를 비평가들은 ‘물성으로 채워진 평면’이라고 하였으며 작가자신은 ‘회화의 시적변용’이라고 하였다.

“이른바 나의 닥 작업은 완제품으로서의 종이를 사용하여 그 위에 종이의 특성을 이용한 인위적인 조형이 아닌, 종이의 물적 실존성에 나의 감수성을 동화하여 물(物)과 아(我)의 일원적 합일을 체험하는 쪽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 체험의 진행은 먼 과거의 내면풍경에 의해 촉매되었음을 다음의 피력은 말해준다. “내가 요즘하고 있는 닥 시리즈는 어린시절의 기억이나 나를 형성해준 고향에서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에요...어린시절 아침에 잠을 깨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빛입니다. 그리고 창호지에 넣은 코스모스나 국화꽃잎 등이 은은하고 아름답게 비쳐오면 그 곳에서 하얀 밥에 파르스름하게 군 김과 된장을 먹고 자랐으니까요.” 창호지문과 거기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미묘한 반사는 먼 훗날 닥의 푸근한 질감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작가의 변에서도 이점이 선명하게 표상되고 있다.

“문에 바른 한지를 통해서 한국인은 ‘안’과 ‘밖’의 이중적 세계를 공유하는 슬기를 체득하게 된다. 문종이의 누르스름하게 바래인 빛 속에서 시간의 앙금을 느끼며 그 위에 수묵처럼 번지는 달빛과 대나무 그림자를 통하여 공간의 물성과 그 여백을 즐겼던 것이다. 방바닥도 종이이고 들창도 종이이다. 외부세계를 격렬하게 직접 체험하려는 것이 아닌, 종이를 통해 걸러지고 투사된 담담한 상징과 은유적 세계로 외부를 흡수하려는 슬기가 그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닥 작업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고향의 발견, 고향으로의 회귀가 되는 셈이다.




김동수, 사경산수의 대표작가
대산 김동수는 계통으로 본다면 청전 이상범의 사경산수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근대 4대가(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 의재 허백련)이후 한국산수의 전통을 잇는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근대 산수화에서도 아직 남아있던 관념취를 벗어나 철저한 사생에 의한 것이 그의 작업 내역이다. 그는 학교(홍익대)에서 청전에게 직접 배웠으면서도 청전이 아직도 떨치지 못했던 관념의 여진을 사생을 통한 한국산수의 통찰로 극복해나갔다. 이점에 있어선 동년배의 산수화가들이 보여주었던 절충적 형식(사생+관념)과도 뚜렷한 차별화를 보여주고 있다. 건삽한 먹색과 까슬까슬한 운필을 통해 전달되는 산수의 전개는 전형적인 한국산수의 건조한 대기와 소슬한 기운을 득의하게 묘출해 준 것이었다. 이로서 그의 존재는 4대가 이후 사경산수의 맥을 잇는 대표적인 작가로 뚜렷한 위치를 점하였다고 하겠다.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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