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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두 개의 동행전 - 김용준과 김환기 / 장우성과 박노수

오광수

오광수 미술칼럼(67)




근원과 수화의 우정 그리고 예술
“미술관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근원 김용준과 수화 김환기가 시간의 차이를 두고 살았던 옛 <노시산방>의 터가 있다. 한 세기를 향해 지나가는 시간은 무심하게도 그곳을 다른 이의 삶의 터전으로 변모시켰고 그 옛 모습은 온전히 감추어졌다. 흔히 시간은 그렇게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고 때로는 사라지게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곳을 바라보며 지켜내지 못함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러나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함께 사라져간다.”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린 ‘두 예술가를 만나다’(4.27-6.26)의 리플렛에 실린 글이다. 무언가 모르게 비감에 찬, 그러면서 두 거장이 스쳐간 자리와 그들이 가진 한 때의 우정을 가슴 아련히 그려보게 한다. 근원(김용준)과 수화(김환기)의 관계는 노시산방(老枾山房)에 얽힌 이야기로 잘 드러난다. 『근원수필』에 나와있는 <육장후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좋은 친구 수화에게 노시산방을 맡긴 나는 그에게 화초들을 잘 가꾸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의정부에 새로 마련한 삼간두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중략....서울로 올라온 뒤로 한번은 노시산방의 새 주인 수화를 만났더니 그의 말이 노시산방을 4만원에 팔라는 작자가 생기고보니 나에 대해 대단히 미안한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두 거장을 대상으로 한 전시는 1996년 환기미술관에서 한차례 꾸며진 바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근원의 문인화, 서책의 장정, 속표지 등 인쇄물로 남아있는 그림들, 수화의 유화, 데생 그리고 두 거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서세옥의 회고를 담은 영상물이 첨가되었다. 이 전시가 갖는 의미는 두 거장의 우정을 나누었던 옛 터전이 미술관의 지근에 위치하고 있어 두 거장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였다는 점과 한 시대를 대표하는 두 예술가의 삶과 예술이 갖는 높은 격조를 재음미 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월전과 남정, 사제간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 모색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열린 ‘사제동행’(4.23-7.10)은 같은 길을 걸은 사제(월전 장우성과 남정 박노수)간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월전과 남정은 해방 후 문을 연 서울대 미대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 50년 이상 같은 길을 걸었다. 이들의 만남은 일본화의 잔재를 벗어나 새로운 민족미술을 세워나가려는 역사적 과제를 공유했다는데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계승과 발전이라는 한국화의 영역을 풍요롭게 가꾸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는데서 평가되어진다. 일본적 잔재의 극복은 단순히 기법의 불식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귀의를 통한 전통의 이해와 그것의 새로운 방향에로의 모색에서 찾아지지 않으면 안된다. 월전과 남정은 바로 이 점에 있어 뛰어난 방법을 열어 보인 소수의 작가들에 속한다. 이들이 보인 새로운 방법은 문인화의 정신세계와 내용에 있어 시대정신을 가미한 것으로 민족미술건설의 주요한 대안의 하나였다. 스승과 해방 제1세대의 제자들에 의해 전개된 새로운 동양화의 모색은 서울대 미대를 중심으로 하나의 전통이 되어 이어졌다.

월전은 한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서양화법을 대담하게 원용한 풍경화를 시도한 바 있듯이 동양화의 고식적인 소재주의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천착해보였다. 후반으로 오면서는 시대의식을 강하게 반영하는 비판적 내용을 즐겨 다루었다. 옛 문인화가(문인사대부)들이 심심파적의 음풍영월에만 빠지지 않고 시대를 비판하고 세태를 풍자한 것과 같이 월전은 분단의 비극, 생태계의 파괴, 인간욕망과 허위의식을 고발하는 내용의 주제를 줄곧 다루었다. 문인화가 지닌 사회비판, 문명비판의 요소를 새롭게 가꾸어내었다.

남정은 날카로운 운필과 짙은 채색과 운염의 방법으로 격조 높은 문인화의 경지를 모색하였다. 내용에 있어 관념취가 두드러진 반면 화면은 현대적 감각과 깊이의 구성을 보여주어 월전과 더불어 동양화의 새로운 시대를 구현하는데 앞장섰다. 전통적 형식인 동양화가 해방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굴절을 겪으며 다양하게 변모를 거듭해 오면서도 언제나 정신적 귀의가 가능했던 것은 월전과 남정과 같은 작가들의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발전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예술가를 만나다’와 ‘사제동행’이 단순한 회고취의 전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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