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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풍토와 예술 - 이타미 준을 회고하면서

오광수

오광수 미술칼럼(69)

재일 한국인 2세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유동룡 1937-2011)이 지난 6월 26일 타계하였다. 이타미 준은 건축가 사회에선 잘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편이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에서의 활동이 왕성한 편이었던데 비하면 더욱 그런 인상이다. 교포예술가들이 지닌 경계인으로서의 소외성, 외국인들보다 더욱 낯설게 보는 한국풍토의 배타성 때문일까. 그런 점도 있을 테지만 그의 작품들이 널리 알려질 기회가 적었으며 더욱이 시선을 끌만한 대형 프로젝트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몇몇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재일 한국인 미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위로는 곽인식(1919-1988), 전화황(1909-1996) 등이 있으며 동년배로는 이우환, 곽덕준, 문승근(1947-1982) 등이 있다. 그는 같은 한국인 미술가 곽인식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자신이 곽인식이 없었다면 자기 존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곽인식의 감화가 컸음을 엿볼 수 있다. 그가 누구보다도 한국의 도자, 민화, 골동 등 한국문화에 심취한 것도 곽인식을 통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부단한 자각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가 얼마나 자기 정체성에 깊이 경도되었는가는 그가 남긴 작품들에서 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한국 여러 곳에 산재해 있지만 특히 제주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2000년대부터 적지 않은 작품을 제주에 남기고 있으며 작고할 때까지 국제영어교육도시 프로젝트의 총괄을 맡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 교회, 전원집합주택, 골프클럽하우스, 호텔 등 다양한 편이지만 미술관과 교회가 특히 인상적으로 떠오른다. 초기 <온양민속박물관>과 일본 훗카이도의 <돌의 교회>를 비롯해서 제주에 세워진 <돌미술관>, <물미술관>, <바람미술관>, <두손지중미술관>, <방주교회>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다. 특히 <돌미술관>, <물미술관>, <바람미술관>은 제주의 풍토에서 태어난 것으로 풍토와 건축의 관계를 흥미롭게 음미케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상의 미술관은 기능으로서의 건축적 공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간에 쓴 한편의 시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본다. 고도로 조탁된 언어의 결정체로서 시말이다.




<돌미술관>, <물미술관>, <바람미술관>은 각각 돌, 물, 바람이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되고 있다. 제주의 자연이 직접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덕에 흩어져 있는 돌, 견고한 철판으로 이루어진 간결한 구조의 공간속에 놓여있는 몇 개의 돌, 그것으로 완성되는 <돌미술관>, 가득히 흘러넘치는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듯한 유연한 물의 실체를 담은 <물미술관>, 틈새를 두고 이어진 나무판자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잡아 공간에 가두는 <바람미술관>. 언젠가 그가 조선백자에 대해 언급한 “작위에 흐르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강건한 처리”, 그리고 신라불상에 대한 찬탄 “인간의 생활과 사상 가운데서 생겨난 조형의 순수함의 표징”이란 언술은 차라리 그 자신의 작품에 대한 대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삼다도에서 힌트를 얻은(여자대신 물) 이들 미술관이야말로 제주를 가장 잘 구현한 기념물이 아닌가 생각된다.제주는 육지와는 다른 아열대성 기후조성을 지녀 맑은 공기, 풍요로운 식물, 완만한 오름과 새롭게 조성된 많은 올레길과 더불어 관광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이 천연의 자연 속에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 예술가들의 창조적 구조물들이 어우러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지역이 될 것인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건조물들을 보면서 그가 일찍이 여기에 자신의 예술을 담으려는 남다른 열정을 지녔던 것을 어렴풋이 짐작케 한다. 제주라는 풍토가 지닌 풍요로운 영감들로 자신의 조형언어를 구현해 내려는 열망에 불탔던 것을 느끼게 한다. 이타미 준을 회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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