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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베니스비엔날레 단상

오광수

오광수 미술칼럼(71)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한·터 문화행사에 참석하고 귀국길에 베니스에 들렸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자르디니(Giardini)에는 아직도 사람들로 붐빈다. 자르디니의 각 국관을 돌고 아르세날레 주제관을 대충 보고 나오는데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베니스비엔날레가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는 것은 국제미술전 뿐 아니라 국제영화제, 국제건축제를 비롯한 여러 국제행사가 잇따라 열림으로서 지속되는 축제 분위기의 영향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딘가 모르게 국제미술전이 전에 없이 사양길에 접어든 느낌의 쓸쓸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뚜렷한 이슈 또는 화제가 없어서? 아니면 변화의 물결이 없어서? 전반적으로 영상물이 퇴조하는 가운데 숫제 전시장 전체를 작품화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구조물의 등장이 현저하다. 내용 부실을 메우려는 물량공세도 한 몫을 하면서.




그나마 지금까지 비엔날레는 실험이란 매력 때문에 관심을 끌었다. 언제나 신선함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일정하게 채워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가 사라졌다. 아마도 베니스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괴, 현혹, 뻔뻔스러움, 대형화, 무모함이 판을 치는 현대판 매너리즘(Mannerism)이 여기서도 극성을 부린다. 올해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프 슐링엔지프의 마지막 퍼포먼스로 무대를 꾸민 독일관은 출품작가로 선정된 뒤 사망했다는 충격 때문인지 묘한 감회를 자아내게 했다. 전시장 전체를 성당의 제단으로 꾸민 것도 출품작가의 죽음과 연결되면서 분위기를 상승시켰다.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관은 다른 국가관에 비해 가장 차분함을 보여준다. 상처와 치유라는 주제에 있어 독일관과 일정한 견인을 이루면서도 독일관이 보여준 서사적 전개에 비해 시적인 간명함과 유머러스로 인해 한결 대비를 이룬다. <피에타>, <엔젤솔저>, <플라스틱 물고기>, <브로큰 미러> 등 각기 다른 주제를 모아놓으면서도 대비와 조화, 삶과 죽음, 갈등과 화해 그리고 상처와 치유라는 거대한 주제어로 종합되는 문맥의 일관성이 더욱 시적인 고양을 이끌어 낸다.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아르세날레의 주제관은 ‘빛’이란 주제와는 걸맞지 않게 맥이 빠진다. 베니스는 두 개의 축, 국가관이 보여주는 다양성과 국제관이 보여주는 통일성에 의해 활기를 유지해 온 면에 비춘다면 올해의 주제관은 전혀 그런 기능을 다하고 있지 못한 느낌이다. 지금까지의 요란스럽고 무거운 기획에 비해 조용하면서도 명상적인 깊이를 지녔다고 보는 평가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구성에 있어서도 그렇거니와 주제에 따른 해석도 선명하지 못한 느낌이다.
한국관 개설을 마지막으로 자르디니에 더이상 국가관 건설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베니스 시내에 장소를 빌려 여는 국가관이 늘고 있는 추세다. 아르세날레의 일부도 국가관으로 대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비엔날레 기간 중 도시전체가 미술전으로 채워지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여기에 곁들여 제안하고 싶은 것은, 우리도 국가관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시내에서도 국가관과 별도로 한국현대미술을 알리는 기획전을 꾸준히 갖는 것은 어떨까 하는 것이다. 1995년 ‘호랑이 꼬리’와 같은 전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열린다면, 한국관이란 좁은 공간에서 메울 수 없는 한국미술을 그나마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유럽에선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이지만, 옛 건물을 개조해서 현대미술관으로 만든 프랑스와 피놀트재단의 팔라쪼그라시가 베니스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본래 세관건물이었다는 이곳은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이 공간에 걸 맞는 현대미술의 수장과 전시도 돋보인다. 이탈리아의 현대미술의 저력을 여기서도 만날 수 있다. 베니스에 가장 걸 맞는 구겐하임베니스는 관람객들로 전시장이 꽉 찬다. 고전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베니스의 분위기와 걸맞아서 그런지 이곳에 들어오면 편안하다.
베니스의 또 하나 삽화. 깃발을 앞세운 일본관광객이 상마르코광장을 누빈 이후, 한국관광객의 떠들썩한 소리가 광장을 채우더니, 이제는 중국관광객들이 깃발을 들고 몰려다닌다. 흥미로운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다음은 어느 나라일까.
늦가을의 따사로운 햇살, 상마르코광장 성당 앞에서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하는 여행객들 속에서 잠깐 시간의 덧없음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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