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82)한묵과 이중섭과 르네상스와

오광수

‘한묵’ 개인전(8.22 - 9.16, 갤러리현대)과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8.29 - 11.21, 서울미술관 -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 개관전이 이번 시즌에 가장 눈길을 끌었다. 2002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이후 10년만에 열리는 한묵 개인전은 회고전으로서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서울미술관 개관전 역시 내용상으로 보면 회고전에 해당된다.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가 전시명제이고 ‘이중섭과 르네상스다방의 화가들’이 부제여서 이중섭과 관계된 전시임을 시사한다. 그 내용을 더 정확히 짚어보면 52년 임시수도였던 부산 대청동의 르네상스다방에서 열리었던 ‘기조’전의 재현이다. 그룹의 회고전은 드문 일이다. ‘신사실파’전이 두어 차례 열린 것 외에는 처음이다. 이 그룹전에 참여했던 작가들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 60년 전을 되돌아보게 한다. 전시장은 작품전 외에 당시 다방 모양이 재현되고 그 시대 가락들이 흘러나와 문득 타임머신을 타고 60년 전 부산거리의 한 다방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시간의 저 너머에 펼쳐졌던 당시의 정경이 몽환처럼 되살아나 감상적인 기분에 젖게 한다.

 

6.25동란이 나고 이어서 1.4후퇴로 인해 서울과 북녘지역의 피난민들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독 안과 같은 부산일대에 밀집되었던 시대, 인구 20만이었던 공간에 백만이 밀려왔으니까 일선에 못지않게 폭발 직전의 아비규환의 상태였던 부산거리, 갈데 없이 휩쓸려다녔던 예술가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기 위해 모여들었던 곳이 다방이었다. 다방은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미술가들에겐 작품을 발표하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광복동, 남포동, 대청동, 중앙동에 산재해있었던 다방, 그 가운데 금강, 밀다원, 르네상스, 실로암, 늘봄, 낙원다방은 개인전과 그룹전이 자주 열리었던 곳이었다. 르네상스다방에선 ‘후반기동인’전 , ‘토벽동인’전, ‘기조’전 등 그룹전이 열리었다. ‘토벽동인’이 부산과 경남일대의 토박이 작가들의 모임이었다면 ‘후반기’나 ‘기조’는 서울서 피난간 작가들의 결속체였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던 상황,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그룹이 만들어지고 어슬프기짝이 없던 다방이란 공간에서 전시를 열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과연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창작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이경성은 한 전시평에서 “그러나 이같은 동란의 생활속에서도 미술인들은 부산의 다방을 배경으로 줄기찬 활동을 계속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의 창조의욕의 표현이라기보다 생활태도 내지 생리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라고 적고 있다. 창작의욕의 결정이기보다는 그리지않으면 안된다는 생리적 현상, 습관적 현상이 아닌가 라고 진단하고 있다. 어쩌면 이 무의식적 생리현상을 통해 그나마 자신들을 가눌수 있지않았을까 생각하면 처연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기조전에 모인 멤버는 한묵, 이중섭, 박고석, 이봉상, 손응성, 정규 등이다. 조형이념에 의한 결속체라고 보기에는 개별성이 강한 작가들의 모임이란 인상을 준다.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증거로서의 절실성이 자연스럽게 그룹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본다. 이 점에선 ‘후반기’나 ‘토벽’ 역시 별 차이가 없다.
이번 회고전에 나온 작품들은 52년 당시 출품되었던 작품들은 아니다. 제몸 하나 가누기도 벅찼던 당시를 떠올려보면 그 당시 작품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란 기대는 무리다. 대부분 환도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물론 이 가운데는 당시 다방에 걸리었던 작품이 전연 없다고는 속단할 수 없다. 이는 시비거리가 되지 못한다. ‘기조’전으로 모였던 작가들이 60년 후 다시 모였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전시는 의미가 있다. 이들의 50, 60년대 작품들을 보면서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결속될 수 있었던 동지적 태도가 흐뭇하게 전달된다. 개성이 강하면서도 묘하게 한 시대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 눈길이 끌린다. 역설적이게도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던 시대의 분위기로서 말이다. 이중섭, 박고석, 이봉상, 손응성, 정규가 가고 유일하게 한묵이 남아 이 전시를 되돌아보는 감회는 어떠했을까.

 

회화가 상실되어가는 시대, 오래만에 회화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불러일으켰던 ‘한묵’ 개인전, ‘기조’회고전은 무더위가 극성이었던 이 계절에 우리의 가슴에 신선한 한줄기 바람이었음을 기록해두고 싶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