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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미니즘 혹은 여성 미술_ 윤석남, 정종미 전시를 보고

송미숙

송미숙의 미술시평(3)
페미니즘 혹은 여성 미술_ 윤석남, 정종미 전시를 보고


1980년 후반 민중미술계열, 보다 정확하게 민족미술협의회의 여성분과로 출발한‘여성미술연구회(이하 여미연)의 주역으로 이제까지 지속적으로 여성적 화두를 실천해왔다고 평가되는 윤석남 개인전(2.4- 2.24)이 학고재에서 열렸다.‘ 여미연’은 여성의 보편적 감성이나 본성을 드러내고자 한 본질주의적 접근대신에 여성미술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인식을 기초로 하는 유물론적 페미니즘을 표방해 한국 페미니즘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나 성차별 자체나 독자적인 미학과 조형언어의 구축보다는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에 치중하여 민중미술의 이념과 양식을 그대로 전수했다고 평가된다. 1990년대를 경과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에도 밀어닥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치 하에 또는 그것을 수용하면서 한국페미니즘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담론의 하나인 타, 혹은 타자(the other)가 여성을 하나의 주체이며 힘으로 인식하게 하여 논의의 위상을 주변/타자에서 중심/주체로 끌어올리기에 이르며 여미연 또한 이러한 변화와 함께 계급과 노동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여성 자신의 문제로 전환을 시도했다. 여미연의 초창기 동인이었던 윤석남은 90년대에 들어와 부목을 사용하는 오브제 회화로 새로운 페미니즘 조형언어를 계발하는데 성공한다. 남편과 자식을 돌보느라 늘어진 어머니의 팔 조각, 뾰족하게 솟아난 못이 박힌 핑크빛 소파의 설치환경 등 여성들의 희생,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부당한 삶, 일상적인 삶의 리듬이 관장하고 있는 가정의 특정한 공간기저에서 증폭돼가는 히스테리와 착란의 불안정한 기운으로 인해 심란하고 공격적인 장소로의 변질을 연출(핑크 룸)해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구축해 왔다. <2004년부터 윤석남은 버려진 개들을 거둬 기르는 이애신 할머니와 만나고부터 지금까지 1천여 마리의 나무-개를 조각하기 시작했고 학고재 전시는 지난 해 10월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쉬이 변하고 싫증내는 인간들의 변덕스런 마음 때문에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진 개들을 형상화한 것이 아르코 전시‘1,025:사람과 사람 없이’였다면 학고재 전시는 108마리의 나무-개 들을 통한 버려진 개들의 진혼제, 해탈의식이라 이름 할 수 있을 것이다. 108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의 백팔번뇌를 상징하여 흔히 108알의 염주와 108번의 종 울림으로 표현되지만 이 숫자를 나무-개로 옮겨 이 개들은 화려한 꽃, 또는 촛불처럼 보이는 붉은 불꽃 등을 등에 달거나 곁에 두고 있어 실제세계보다는 환상, 혹은 피안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듯해 보인다. 다시 말해 작가의 관심의 대상이 이제 여성 즉 사람에서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희생된 주변의 비천한 동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여성의 고통과 번뇌의 경험이 인간보다 못한 말 못하는 개의 그것에 대한 연민으로 발전한 것일까. 여하간 윤석남의 나무-개의 진혼제는 그<윤석남과 달리 정종미는 이전의 현대 산수화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추상풍경시리즈에서 최근에는 <종이부인> 연작을 통해 여성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금호미술관의 전시(2.6 - 3.1)는 이<종이부인> 시리즈의 일환으로 한국역사속의 11명의 실존 인물들, 허난설헌, 논개, 명성황후, 신사임당, 유관순, 유화부인, 허황옥, 선덕여왕, 나혜석 등을 중심으로 미인도를 곁들여 다양한 <종이부인>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한지, 비단, 모시와 같은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재료에 돌가루를 이용한 천연안료나 자연 염료를 가한 다음 그 위에 들기름, 콩즙과 같은 바니쉬 작업으로 마무리를 해 바탕색 면을 구성하고있다. 이때에 색조는 때로는 밀도있게 때로는 투명하게 겹치고 떠오르게 하여 독특하면서도 미묘한 마티에르 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한지의 질기고도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물성에서 한국여인의 여성성을 발견한 작가는 한국의 역사를 빛낸 여인들의 이미지를 한지로 꼴라쥬하여 이들에게 경의를표하고 있는데 은은하면서도 깊은 톤의 바탕색 면은 부드러운 톤의 한지로 떠올린 이미지와 대비를 이루면서 화려하면서도 놀라운 장식적 효과를 거두어 내고 있어 윤석남의 나무-개에 대한 진혼제와는 대조를 이룬다.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개성과 배경의 두 여성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우리는 단선적이나마 한국여성미술의 단면을 보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으나 한편 한국현대미술에서 과연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즘이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다. 특히 여러 대학에 여성학과, 여성학 연구원은 있어도 미술대학에 페미니스트 프로그램하나 없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해마다 아카데미에서 배출되는 미술인들의 80% 이상이 여성인데도 보수주의 가부장적 기제가 아직도 만연한 한국미술계에서 페미니즘은 공허한 구호에 불구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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