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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스펙터클의 사회

송미숙

송미숙의 미술시평(11)


40여 년 전 국제상황 (Situation International) 그룹의 리더였던 기 드보르 (Guy Debord)에 의하면 현대인의 소외는 이미지들에 의해 조정되고 있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 곧, 스펙터클의 침략적인 힘들에 의해 설명되며 따라서 현대사회를 상품으로 가득찬 물신주의적 ‘스펙터클의 사회’(Society of the Spectacle)라 정의했다. 드보르의 원래 목표는 전후 유럽에서 이른바 ‘현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경제적 힘들에 의해 사적, 공적 일상의 영역에 확산되고 있는 정신적 피폐화의 원인을 밝히는 데에 있었다. 그의 분석은 미디어의‘역사적, 경제적 심리적 근간들을 파헤치는 것이었는데 그가 주도했던 사상의 핵심은 마르크스나 루카치로 거슬러 올라가는 소외의 개념이지만 드보르의 소외이론은 단순히 감점적인 묘사나 개인의 심리적 국면보다는 자본주의에서 절정에 이르는 사회조직의 상업적 행태의 결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그는 부르주아 가치에 대한 파괴의 전략으로 스펙터클로 부터의 개인의 해방을 재천명할 수 있는 일련의 전략을 만들어 내려고 했고 그것을 정도에서 벗어나 의도적인 표류(dérive 를 택하거나 혹은 우회의 방식(détournements)을 제안했다. 드보르의 ‘스펙터클 사회,’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소외이론은 40년이 지난 오늘에도 당위성을 갖는다.

지난 10월에 열린 전시들 중 김기라 (9.19-10.18 국제갤러리) 와 함경아(8.22-10.25 아트선재센터)의 전시는 접근방식과 의도하는 목표는 다르다 할지라도 둘 다 스펙터클 중심,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권력 사회 구조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작업 초기부터 자본주의사회에 내재해 있는 소유계층의 지배이념과 권력에 대한 비판을 일관된 주제로 삼고 있는 김기라는 외견상 완벽하고 화려한 스펙터클 이면에는 소비사회의 권력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적잖은 음모들이 진행돼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사회에 은연중 작용하고 있는 권력관계의 단편들을 모아 자신의 작업 안에 자본주의의 축소모형으로 제시한다. 이때 매스 미디어 특히 TV 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영웅들, 가령 슈퍼맨, 배트맨과 같은 가상의 영웅이미지 혹은 히틀러, 엘리자베스여왕과 같은 권력지배층을 등장시켜 이러한 이미지들 배후의 감추어진 허상과 음모를 폭로하는데 작가는 관심을 갖는다. 미술사 혹은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들을 전용(appropriation)과 패러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다분히 유머러스하고 위트있게 비틀어 변형시켜 비판적이며 동시에 코믹하여 신선함마저 주고 있다. 묘사 가운데 때때로 붓질의 표현주의적 마무리는 비평의 신선함과 도발성을 부가시키는 요소다.

김기라와는 달리 매끈하고 세련되어 다소 아카데믹한 느낌마저 주고 있는 함경아의 표면에서 건드리고 있는 주제는 소비문화에서 종종 드러나는 페티시즘이다. 그러나 그의 페티시즘적 욕망의 언저리, 그 욕망에 도취하는 정황은 미시적인 자신 개인의 도벽증에서 점차 사회적, 역사적 장으로 전이되며 여기서 그의 의혹의 시선은 합법화(?)된 거대 도굴장이라 할 수 있는 서구 미술관·박물관에 박힌다.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은 강대국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거의 무력으로 이루어진 식민지 발굴과 약탈로 방대한 양의 문화유산과 예술품들로 채워진 컬렉션들로 형성되었다. 이들 박물관은 국가의 힘을 과시하고 문화적 위상을 고양시키는 장치이면서 오늘 날은 주요 관광수입원으로 국가경제에 기여도가 상당하다는 사실에 작가는 주목한다. 글로벌 차원의 일반대중의 문화향수에 대한 욕구를 증진, 충족시킨다는 긍정적인 미술관·박물관문화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이 어두운 면을 박물관을 모방하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드러내고자 한다. 개인의 도벽행위를 바꿔치기를 통해 합법화한 논리가 강대국의 국가적 차원의 약탈을 박물관이라는 문화교육기관으로 탈바꿈해 합법화한 논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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