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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송미숙

송미숙의 미술시평(32)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이 시작됐다. 올 초에 계획했던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꽤 여러 차례 이탈리아 여행을 했으나 일 때문에 혹은 짧은 여정스케줄 때문에 놓친 아레초(Arezzo), 라벤나(Ravenna)도 들릴 겸, 특히 17-8세기 때 건축사에 획을 그었고 가깝게는 아르테 포베라의 본원지인 토리노도 여정에 며칠 잡혀 있었다. 또 간 김에 베니스도 들려 비엔날레도 볼 생각이었으나 그리 절박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큐레이터라기보다는 오히려 저작과 편집인으로 더 잘 알려진 스위스 여성 비체 쿠리제(Bice Curiger)가 한 전시이고 조명(?) (Illuminations/Illuminazioni)이란 주제도 모호할 뿐 아니라 사실 이제 비엔날레는 식상할 정도로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미술계 전문가들, 즉 작가나 비평가들은 외국을 여행할 때 현대미술위주로 일정을 잡곤 하지만 필자는 좀 다르다. 가능한 한 방문한 국가, 혹은 도시가 주는 특이한 역사적, 문화적 문맥에 더 관심이 끌린다. 이번 여행도 이러한 관심과 무관하지 않았다.
처음 도착한 도시 밀라노는 라 스칼라 극장,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패션 갤러리뿐 아니라 갈 때마다 내가 꼭 들리는 곳이기도 한 브레라 갤러리(Galleria Brera)가 있는 곳이다. 한 때 나폴레옹이 도시를 점령하여 자리를 잡기도 해, 갤러리 뜰에는 카노바(Canova)의 나폴레옹 상이 놓여있기도 하다. 아울러 브레라는 특이한 투시화법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극도의 축도법으로 유명한 만테냐의 <죽은 예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성스러운 대화(Sacra Conversazione)타입의 일명 <브레라 제단화>, 라파엘로의 초기의 페루지노의 영향이 다분히 보이는 마리아의 혼인화도 있는데 이 그림은 특히 알베르티의 이상도시(Idealized City)를 구현한 회화이기도 하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수도원 식당에 있는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 뿐 아니라 밀라노에서 반드시 가야할 곳은 스포르자 가문이 세운 카스텔로 스포르제스코인데 이 성은 한 때 도시를 지배했던 스포르자(Sforza)가문의 영위(榮位)를 말해 줄 뿐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피에타, <피에타 론다니니(Piet Rondanini)>가 있기도 하다. 밀라노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베니스로 가 물과 태양을 만끽하고 만행열차를 타고 볼로냐를 거쳐 라벤나로 갔다. 이상하게 늘 라벤나를 놓쳤기 때문에 이번에는 작정하고 갔다.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제일 깨끗하고 정돈되었으나 다소 시대퇴행적인 이 도시의 광휘는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지은 산 비탈레 성당(이 성당의 8각형의 중앙집중식 평면도, 오픈개념의 회랑의 설계는 후에 건축사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오노리우스(Honorius)가 그의 이복누이의 죽음을 기려 지은 갈라 플라시디아 대묘(Mausoleum), 산 아폴리네르 누오보, 유명한 막시미아누스의 상아 옥좌, 무엇보다도 모자이크화의 본산지인 라벤나에서 그 예술의 진수를 찬탄하고 볼로냐로 갔다. 최초의 대학이며 사립 미술학교가 세워졌던 볼로냐는 미켈란젤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야코포 델라 퀘르차(Jacopo della Quercia)의 도시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그의 부조가 새겨져 있는 산 페트로니오는 파사드가 수리중이어서 사진엽서로 만족해야 했다.



로마를 제외한 17세기 바로크 건축의 정수를 보려면 토리노를 가야하는데 특히 이 도시는 과리노 괴리니(Guarino Guarini)를 위시해 그의 환상적인 건축언어에 고전주의를 얹어 새로운 고전경향을 수립한 필리포 유바라(Filippo Juvarra), 특히 르 꼬르뷔지에가 찬탄해 마지 않았던 수페르가(Superga)가 있는 곳이다. 이 도시는 20세기에는 미래주의 건축가 산텔리아, 보다 최근에는 아르테 포베라, 그리고 알리기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들은 토리노 시립미술관 GAM 컬렉션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요절한 보에티는 밀라노의 트루사르디 재단에서 현재 회고전 전시중이다.
아레조는 르네상스의 3대 계관 시인이자 철학자의 하나인 페트랄카의 고향이자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네러티브 제단화 그룹인 진짜 십자가의 발견과 증명이 있는 산 프란체스코 성당이 있는 곳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English Patient 1996)에 나와 더욱 유명해진 이 피에로의 그림들은 그 특유의 투명한 색채와 무한성을 자아내는 웅장한 형태의 기용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작업이다. 피렌체를 갈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솔직히 말해 이 도시는 너무 ‘역사와 조상만 팔아먹고 산다’는 인상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산 로렌조 성당 바로 옆 노천시장에서 나는 싸구려 가죽냄새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웅장한 두오모 돔, 지오토의 캄파닐레, 세례당, 우피지, 팔라조 피티의 엄청난 컬렉션을 무색케 한다.
잃어버린 시간, 잊혀진 역사를 찾아서 유럽, 특히 이탈리아를 찾는 이들을 위해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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