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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트럼프 시대의 뉴욕 미술계

곽자인

Anonymous, Nasty Woman, 2016

‘다양성, 관용, 진보’로 대변되는 뉴욕의 미술계와는 대척점에 선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뉴욕 미술인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당선을 무효화하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명망 있는 미술비평 매체의 SNS를 통해 유포되고, 새 시대에 작가의 역할을 토론하는 포럼들이 뮤지엄,대안공간, 미술학교 등에서 열렸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시대의 뉴욕의 미술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게 될까.

가장 눈에 띈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번 대선에서 겪은 충격을 주제로 한 작품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삼백 명이 넘는 미국 내 작가가 참여해 퀸즈에서 열린 대규모 그룹전 ‘Nasty Women’에선 트럼프 당선인을 희화화하고,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미화한 작품이 다수 전시되었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곧 나의 패배”라는 자조적인 작품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LA에서는 여러 동료에게 기부받은 9.5ℓ에 달하는 피를 이용해 트럼프 반대 벽화를 그린 작가가 화제가 되었다. 대선 결과의 충격 가시기도 전에 가까이 다가온 대통령 취임식, 본격적으로 펼쳐질 트럼프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이 되고, 당선 후에도 돌발적인 언행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는 등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치인이지만, 주 지지층인 노동자들에게 내건 고용보장, 경제 안정, 미국인 우선주의, 배타적 이민정책 등의 공약에서 1980년대의 레이건 시대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실제로 많은 유권자가 80년대를 추억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사람으로 트럼프를 선택한 만큼 미국 사회와 미술계의 움직임은 레이건 때와 비슷한 맥락으로 가지 않을까. 보수정권과 정면으로 충돌한 페미니즘, 동성애자 권리운동, AIDS, 계층 간 갈등, 막바지를 향해 가던 냉전상황 등의 80년대 각종 사회, 정치적 이슈가 아이러니하게도 큰 양분이 되어 다양한 사조의 작품과 지금까지 활동하는 수많은 미술가를 탄생시켰다. 미술인들이 사회적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사회적 이슈들에 관한 작품 창작을 멈추지 않았고 자신들과 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지속해서 주장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지난 11월의 대선 직후부터 보인 백인 우월주의자의 증오범죄와 계층간 갈등, 이민자와 성 소수자 작가에 대한차별을 고발하는 미술매체의 글과 미술인들의 대화에서는 “이런 때일수록 창작에 힘쓰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단결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더 많은 사회적 소수자를 구성원으로 가진 미술계의 특성상 본격적인 트럼프 시대가 열리면 더 격렬한 부침을 겪을 것이며 직접적인 사회고발성 작품과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이 더 많아질 것을 예측할 수 있다. 

한국계 작가인 Jean SHIN은 향후 미술계의 발전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미 수많은 스타일의 작품이 존재하는 만큼 어느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나아가진 않겠지만 지금부터 올 시대를 사는 작가들은 모두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 85년 창립된 여성주의 작가그룹)’ 같은 마음으로 창작활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드러냈다. 물론 이러한 투쟁적 미술관에도 딜레마는 존재한다. 트럼프를 지지한 대다수 소도시의 미국인들과 진보적이고 그에 대해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뉴욕 미술인들의 시선에는 좁히기 어려운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반 트럼프 작품은 뉴욕과 다른 대도시 출신이 아닌 다수의 대중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는 뉴욕시내를 벗어나지 않고는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심하게 분열되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트럼프 시대가 도래한다. 뉴욕의 미술인들은 부조리에 굴하지 않겠다며 단단하게 뭉치고, 작품을 통해 싸우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겠다 다짐한다.

이 혼란의 시대가 창작에는 더없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예술을 통해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고, 더 많은 대중에게 어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지금의 어려움도 덜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곽자인(1985- ) 오번대 심리학 전공, 프랫대 회화 석사. 미술가·큐레이터·미술행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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