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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철의 아티스트데자뷰(2) 최종태 b. 1932

변순철

변순철의 아티스트데자뷰(2)

글 / 최종태
사진 / 변순철

예술의 길은 끝이 없고
나는 다행히 어릴 적부터 좋은 스승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그분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갔다. 믿음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승의 품안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오직 스승을 흠모하는 생활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시절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친구조차도 한 사람 없는 시골에 앉아서 나의 외로운 살림이 시작되었다. 모든 문제를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결단해야 했다. 무엇을 만들까. 어떻게 만들까. 산다는 것이 막막했지만 어쩐 일인지 겁나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끔찍한 세월이었지만 꿈이 있었기 때문인지 좌절이란 것은 몰랐었다. 육이오 전쟁은 끝났지만 얼마나 어수선한 시절이었는가.

문학 쪽으로 향하는 열정은 여전했다. 시와 소설을 읽고 문학 잡지는 있는 대로 사서 탐독했다. 미술 쪽에는 잡지도 없었고 평론이란 것은 더더구나 없는 시절이었다. 그림 친구가 없었던 반면에 문학 친구들은 많았다. 시인 한성기, 박용래 등 많은 문인들과 교유했다.

서구 미술이 물밀듯 흘러 들어왔다. 미국을 통해서였다. 온 세계는 깜깜하게 닫혀 있었지만, 미국으로는 조금 열려 있었다. 일제시대에 나온 책들만 보고 있다가 이차대전 이후 세계의 움직임과 접하게 된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여기에서부터 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모두가 추상 미술의 물결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나는 어찌할 것인가. 나의 존경하는 스승은 일찍부터 그 길의 선봉에 서 있었다. 위정자들은 선거 때마다 중농정책에 열을 올렸지만 우리집 농사로는 밥 먹기도 어려웠다. 땅값이 말이 아니니 팔아서 쓸 수도 없었다. 현실의 문제, 삶의 문제를 형태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민족의 문제와 우리나라의 자연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속에서 나는 인체를 고집했다.

1965년 무렵 나는 결단했다. 나는 한국 사람이다! 민족적 자존심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비서구권의 예술에 대해서 탐색하기 시작했다. 서아시아로부터 극동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아프리카와 남미권에 대한 문화를 찾기 시작했다. 세계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고자 함이었다. 내 머리 속에서는 현대적인 것과 고대적인 것이 뒤섞이게 되었다. 갈등의 시작은 계속되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만들까. 어떻게 만들까. 이 물음은 쉬는 날이 없었다. 삼십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 미술에 대한 애정은 해가 갈수록 더해 갔다. 내색은 안 했지만 지나치다 할 만큼 집착했다...(중략)







본문은 2007년도 최종태의 저서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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