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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철의 아티스트데자뷰(5) 윤석남 b. 1939

변순철

나무라는 소재
사실 아주 구체적인 동기가 있었다. 1990년대 초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에 갔었는데, 감나무 밭에 감나무가 많았다. 거기서 떨어진 가지 하나를 주워 와서 그 나뭇가지에 허난설헌을 새겼다. 나무를 손질하면서 마치 여성의 피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는 딱딱하니까 어찌 보면 여성적인 소재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떨어진 감나무 가지를 만졌을 때의 느낌은 여성의 피부를 만지는 것 같았고, 아주 따뜻했다. 그 다음부터 나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목재상에 가보니 버려진 나무들이 아주 많았다. 목수들은 나무의 둥근 면들은 잘라버리고 네모진 것만 쓴다. 버려진 그 둥근 나무들, 화목으로 쓰일 것들을 사와서 작품에 썼다. 나무의 결이 부드럽고 쭈글쭈글했다. 늙은 여자의 피부 같았다. 표면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얼굴을 그리면 여자가 되었다. 얼굴을 그리면서는 대화를 나눈다. 눈을 그리고 나면 나무가 스스로 여성이 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나무라는 재료는 위험한 소재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사용해온 소재고 재료이기 때문에 진부하고 보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쓸 수밖에 없었다. 나무에 번지는 물결무늬, 주름살 진 피부. 그것을 만지고 나서 그것으로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만큼 나무는 나에게 매력적인 재료다.



평면 작업과 설치 작업
처음의 유화, 평면작품 시절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모습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이었다. 나는 재래식 시장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와글와글 생동감 넘치는, 거친,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들, 웃음소리, 악쓰는 소리를 좋아한다. 그런 어머니들에게서 느끼는 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강인함이다. 그 모습들이 평면 시절의 그림들이 되었다. 한 10년쯤 그것을 그렸다. 그러나 평면이 갖고 있는 답답함이 있었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평면은 그것을 해결해주지 않았다. 벽에서 튀어나오고 싶었다. 90년대 초에 미국에 갔을 때, 내가 어떻게 평면에서 튀어나와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나에게 개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설치를 찾게 되었다. 내 작업에 설치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이전부터, 더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소망이 먼저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설치 작업은 굉장히 연극적인 요소가 크다. 그것이 말할 수 없이 재미있다. 앞으로 다시 평면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설치가 주는 연극적인 효과, 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페미니즘
내가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없었다. 1979년도에 그림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그린 것이 우리 엄마고, 시장의 어머니들이었다. 그리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왜 저 여자들은 극성스럽게 살아야 했는가,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그림이라는 것, 미술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왜소함, 약함을 알면서도 왜 나는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고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여성들, 어머니들을 그리면서 내가 내 병으로부터 나오는 느낌이 있었다. 당시엔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없었어도, 내 외침을 어머니에 비유해서, 또는 여자들의 형상에 비유해서 그렸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본 여자들은 다 못생겼다. 사실 예쁘다 밉다는 생각도 없었다. 나중에 나 스스로 화장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도 해보았지만, 사실 나에게 페미니즘과 연관해서 예쁘다 밉다는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나에겐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났고 여성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바로 페미니즘을 불러온 것 같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그럴 것이다. 윤석남(동생이 아들이길 바라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내 이름도 그렇고, 아무튼 나에겐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럽다는 것이 일종의 콤플렉스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무도 잘 탔다. 남자 아이들처럼 놀았다. 남자들과의 대결의식이 어려서부터 들어 있었다. 억눌리고 소외받고 했던 사람이 더욱 폭넓은 이해와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소외받은 사람이 더욱 넓은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믿는다. 30대 초반에 내가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서 치유할 길이 없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폭발하는 광기에 가까운 상태가 가라앉아갔다. 나는 그것을 김혜순의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에 나오는 ‘들림’에 가까운 상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들렸었다. 정신적인 방황, 자기를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의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이 무당굿 하듯이 그림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나의 페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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