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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철의 아티스트데자뷰(9) 서세옥 b. 1929

변순철

余林下養性, 潛心玩道, 未嘗以沽世.
恢恢乎眼空四海, 獨往而無群.
然, 每自警者, 後生可畏耳.
安知無渙然氷釋於斯道者乎

-乙酉歲首 漫記於天香閣 石室, 山丁

내가 숲속에 숨어 나를 가꾸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도를 넘보는데,
나를 세상에 내다 팔지 않으려 힘쓴다.
넓고 넓도다! 내 눈에는 온 세상이 텅 비어 있음을 본다.
나홀로 나의 길을 가면서 나는 무리지어 있지 않다.
그러나 항상 스스로를 일깨우는 것은
후생(뒷사람)이 두렵다는 것이다.
어찌 이 길을 활짝 얼음 녹이듯 열어놓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할 것인가.

- 을유년 첫머리에 천향각 돌집에서 산정



근원 김용준 선생
어릴 적 집안에 수만 권의 책이 있었다. 소위 제자백가의 글을 뒤지면서 철학과 의학과 문학 등 온갖 지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문학이 특히 그러했다. 당시 나름대로 문학을 정리하다 보니까 언어의 약속된 기호인 문자 이외에는 거기에서 풀려나갈 수 없는, 그런 구속 속에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자유의 천지가 활짝 열리는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림에 관심을 기울였다. 내 선고(諱 徐章煥)께서는 참 철두철미한 독립운동가였다. 선고와 뜻을 같이 하던 길선주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자제가 서양화가 길진섭 선생이었다. 길선생의 소개로 근원 김용준 선생을 만나게 된다. 첫 대면에서 근원 선생은 “환쟁이가 될 건가? 예술가가 될 건가? 그걸 분명히 하게!”라며 방향을 명확히 알려주셨다. 자기의 우주를 창조하는 일, 예술을 위한 정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후 큰 가르침으로 큰 영향을 주셨고, 지금도 추모해 마지않는 선생님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
중국과 일본의 지난날, 소위 새로운 중국화와 일본화니 하는 운동이나 표현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고 철저하게 실패한 선례들이다. 우선 재료 매체의 선택에서 크게 그릇된 것이다. 중국의 경우 서비홍을 비롯하여 일부 작가들이 100년 전 서구 미술표현(그 당시의 주류) 기법과 시각에 크게 자극된 나머지, 모든 사물의 철저한 객관적 사실 모사가 그들의 미술 주류를 형성했다. 미술의 본질적인 정신이나 진보적이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기법이나 표현에 대한 넓은 통찰이나 사고 없이 사실 모사의 미학과 기법만을 모방했다. 화선지에 수묵과 채색으로 원근법, 입체감, 명암 등 초보적인 사실적 표현 따위만 도입했다. 그래서 주관적이고 초월적이고 개방적인 동양미술의 깊은 심미의식을 자각하지 못하고 간과해 버렸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하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서구의 물질적 번영에 자극되어 문화예술도 전적으로 모방하기 시작했다. 독자적 심미의식으로 꽃피웠던 우키요에[浮世畵] 등의 미감을 다 버리고 서구 모방으로 급변했다. 팽창하는 군국주의 바람을 타고, 무지하고 눈 어두운 일부 화단 권력의 실권자(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 등)가 크게 일을 그르쳤다. 서구 회화의 객관적 사실주의에 유화 기법처럼 두껍게 색칠하는 것, 대상을 사실적으로 철저히 묘사하는 것, 거기에다가 섬나라의 희뿌연 분채(粉彩)로 그리게 되면서 이것을 ‘일본화’라 규정했다. 역사적 큰 흐름으로 봤을 때 전혀 개연성이 없었다. 중국과 일본은 서구의 입다 버린 헌옷을 다시 주웠다. 그릇된 미술 운동의 전개로 미술의 미학적 창조적 본질 회복에 큰 상처를 남겼다. 미의 본질을 모르는 비극이다.



동양적 초월정신
아이러니하게도 서구미술은 동양미학의 높고 깊은 세계와 방법을 수용하였다. 서구미술의 한계였던 고갈되고 폐쇄적이고 숨 막히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진취적인 개방적인 현대 미술을 꽃피웠다. 미학적 통찰력 부재와 본질적 가치 판단의 무지에서 기인된 역사적 실수를 한국 미술은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화, 중국화, 일본화… 그림이라는 것은 그림이지 나라 이름이 왜 붙어 다니나?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면 결국 예술은 스스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얼마만큼 넉넉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고, 얼마만큼 넉넉한 시야를 펼쳐 놓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예술은 첫째도 절대 해방이고, 둘째도 자유정신이다. 이것이 그림을 하는 근본정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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