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69)페미니즘을 다시 생각한다

이현경

학술(69) |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여름 학술발표



포스트모더니즘이 획일적 잣대를 해체하고, 그동안 중심에서 밀려난 영역들을 끌어들인다는 기치 아래, 1970년대 이후 나타난 페미니즘은 시각 예술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론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잘 알다시피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인류의 절반이 다른 절반에 의해 부당하게 억압받고 있었다는 전제 하에, 모더니즘적 형식에서 벗어나 작품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역사·사회적인 맥락에서 작품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미술에서 정당한 조명을 받지 못한 여성들을 부각시키는 이러한 시도는 매우 설득력 있지만, 일부 과격한 페미니스트에 의해 대중이 사랑하던 앤디 워홀과 존 레논이 목숨을 위협받는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그들의 논의가 오히려 역차별을 하고 있다고 인식된 후,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현 상황에서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에서는 과감하게 여성이라는 화두를 들고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지난 6월 1일(토), 여름 학술발표에서는 근대기가 될 때까지 우리의 미술에서 망각된 제작자로, 또 대부분 보이기 위한 대상으로서 존재해온 여성을 다루면서,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여성의 정체성을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황정연(국립문화재연구소) 씨는 ‘19세기-20세기 초 궁녀의 침선(針線) 활동과 궁중 자수서화병(刺繡書畵屛) 제작’을 통해 조선말기 궁궐에서 이상적인 군주상을 그린 감계적 글귀, 왕실의 안녕과 평안을 바라는 길상적 주제 등의 실용적 목적으로 제작된 궁중 자수서화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해 보았다. 근대 이전에 제작된 섬유 예술은 그 재료의 속성상 오랫동안 보존하기 어려워 현존 작이 드물기에 자세한 실정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 연구는 많지 않은 수량 중 현존하는 궁중 자수서화에 주목하고, 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된 이 자수들이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침선 궁녀들이 주체가 되어 염색실로 한 땀 한 땀 제작되었음을 입증하였다. 침선 궁녀들은 출신 성분이 낮은 하급 실무자의 친인척이거나 천출인 기녀들로 구성되었지만, 같은 침선 궁녀들 중에서 자수를 맡는 수방 궁녀들은 회화성이 풍부한 고도의 기량을 요구하기에 더 좋은 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제작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궁중 자수서화는 색감이 다양하고 형태가 자연스러우며, 겹수, 사선수, 자련수 등의 기법으로 입체감이 돋보이도록 수를 놓아 우리의 독특한 섬유 예술이 되었다.
   
고연희(이화여대) 씨는 ‘19세기 남성문인의 미인도 감상 : 재덕(才德)을 겸비한 미인상 추구’에서 이전 시기와 다르게 전개되었던 19세기의 미인도 감상 풍토를 살펴보았다. 미인도는 회화의 오랜 주제로, 조선시대에는 그 시기별로 미인도의 향유 양상이 달랐다. 조선 전기에는 애상적 분위기의 미인이나 양귀비와 같이 화려한 미녀가 중심 주제였는데, 엄격한 성리학적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미인도의 제작이나 감상이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양란 시기에는 애국적 의로움이 돋보이는 미인도가 감상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가 증가면서 보다 세속적인 미인도가 유행하였다. 이후 19세기에는 신위(申緯, 1769-1847)를 비롯한 문인들이 문집에 ‘여사(女史)’라는 호칭을 빈번히 쓰면서 그림에 능한 학식 있는 여성들을 선호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이 여성들은 중국 고전 문헌에 나오는 여성들로 송대의 이청조, 명말청초의 유여시 등이다. 이들은 주로 독서하는 여인상으로 그려졌는데, 이러한 풍토는 19세기 문인층의 고전에 대한 복고적 취향을 반영하며 나아가 근대의 진보적 여성상을 예견한다고 볼 수 있다.
   
최열(서울대) 씨는 ‘망각 속의 여성: 19-20세기 기생출신 여성화가’에서 그동안 기생 화가라는 주제에 대한 미술사적 인식이 부족하여 없던 자료 중에 그나마 남아있던 자료와 작품이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현재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일제시기 신문과 잡지 등의 자료들을 끈기 있게 추적하여 근대기 여성의 미술 활동을 정리하였다. 근대 초기 미술계에 유일하게 여성으로서 족적을 남기고 있는 기생출신 화가들은 그 직업에 대한 사회적 천대 속에 조선미전에까지 입선된 화가들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소외된 영역에 존재하였다. 주로 동양화의 사군자 등을 주제로 그림을 남긴 이들 화가는 죽향, 진홍, 소미, 주산월, 김능해 등의 구체적 이름으로 남아있으며, 이들의 활동은 이 시기 일제에 의해 침투되는 동양화의 풍조와 비교하여도 색다른 양식을 선보인다. 때문에 이들을 회화적으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외 구정화(백남준아트센터) 씨는 ‘근대의 기획, ‘현모양처’에 대한 여성 화가들의 상징 투쟁’이라는 주제로 나혜석과 천경자의 작품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이제 익숙한 주제가 된 여성주의 담론들을 치밀하게 연구한 발표들이 있었다. 양은희(숙명여대) 씨의 ‘텍스트와 실천 사이에서 :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미술 이론의 수용, 전개, 그리고 전망’, 김현주(추계예술대) 씨의 ‘1980년대 ‘여성미술’에 대한 망각현상’, 정연심(홍익대 교수) 씨의 ‘2세대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 미술비평’에서 그 전개 과정을 살필 수 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