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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30) 故석남 이경성 관장 추모 세미나

이현경

아직은 겨울의 한파가 쨍하던 지난 2월 17일(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해 돌아가신 고(故)석남 이경성 선생의 생신날에 맞추어 그를 향한 추모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의 처음은 이경성 선생의 생전 인터뷰를 통하여 “나이가 들고 병실에 있으니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의 반도 언어로 되어 나오지 못한다”는 답답함을 호소하면서도 지난날 그가 미술계에서 생각하였던 여러 비전을 띄엄띄엄 들려주셨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어 배순훈 현(現)국립현대미술관장님은 인사말에서 “이경성 관장님이 활동하시던 그 시대, 국립현대가 작가에게 전시비를 충당했던 어려움이나 근대와 현대가 구분된 미술관 건설이 필요하다던 그 말씀이 지금의 전시예산과 2012년 도심 미술관 건설에 할당된 예산을 보면, 현재 실행으로 옮겨지고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 인사말처럼 이경성 선생의 선구자적 비전이 미술계의 긍정적 반향을 가져온 결과를 우리는 지켜볼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에 그분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오광수(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씨는 ‘미술평단의 형성과 오늘의 과제’에서 근대기부터 시작된 우리 미술계의 평론의 양상을 점검하면서, 20년대 미술과 다소 무관한 문사들의 신문을 통한 전시평에서 30년대 작가와 비평을 겸하는 평론가의 등장이 6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던 시대에, 이경성 선생은 51년 최초의 전문 미술평론가로 등장한 이 후 창작과 비평의 동반자적 입장을 정착시킨 업적을 가진다고 평하였다. 더불어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적 양상이 팽배한 요즈음, 비평의 활성화가 더욱 강하게 요구되는 때에 이경성 선생의 활동과 관점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김현숙(미술평론가)씨는 ‘한국근대미술사학 연구의 태두-석남 이경성’에서 우리에겐 주로 일제 강점기로 생각되는 근대미술에 대한 이경성 선생의 남다른 관심과 근대 미술 자료와 작품의 산일(散逸)을 막기 위해 애썼던 노력들을 짚어주었다. 이경성 선생의, “전통미는 오늘의 감각으로 탐구하여야 한다”는 기치아래 근대기 왜곡되고 훼손된 전통미의 본질을 비판적으로 극복해야 현대미술이 올바로 세워질 수 있다는 생각과 현대를 위해 우리에게 취약한 근대 미술을 튼튼한 교량으로 만들려는 그의 사학 정신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문제의식이라고 하였다.


조은정(미술평론가)씨는 ‘석남 이경성 미술평론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의 복잡한 현대사와 그 증거로서 시대를 반영하는 미술 속에서 지난 60년 동안 우리 미술의 문제를 확인하고 대안을 제시했던 이경성 선생의 수많은 평문(評文)을 논하였다. 발표자는 이경성 선생이 철저한 모더니스트였기에 6, 70년대 실험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파벌싸움의 근원지인 국전 폐지를 주장하였고, 그 대안으로 현대 미술을 국가 제도적으로 후원하기 위한 국립현대미술관 건립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최은주(국립현대미술관 사업관리팀장)씨는 ‘석남 이경성과장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약 8년이라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직을 수행하였던 이경성 선생의 미술관에서 활동상을 살펴보았다. 작품 보존과 전시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좀 더 넓은 수장고와 전시실을 갖춘 과천으로의 이전한 점, 작품 연구ㆍ조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도서ㆍ자료실을 구비하고 미술관 직제에 최초로 큐레이터를 도입하고 양성한 점, 그 당시 사립기관으로서는 하기 힘들었던 소장품의 수집과 대규모 국제전을 기획한 점 등을 논하며 이경성 관장이 국가기관으로서 미술관의 초석을 다진 업적들을 설명하였다.


이상의 발표순으로 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윤범모(경원대학교 교수), 기혜경(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김달진(김달진미술연구소장)씨의 질의가 있었다. 종합토론에서는 중단된 석남미술상과 평론가상의 향후 향방에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세미나를 통해 이경성 선생의 우리 미술사에 대한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책 몇 권으로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필자의 인식을 다시 고칠 수 있었다. 이경성 선생의 업적은 미술에 대한 기반이 허술했던 시대에 ‘최초’라는 말이 붙는 일들이 참 많다고 느끼며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 그를 따르며 실무를 담당하였던 많은 사람들의 고생들도 생각되었다. 또한 선생님 말년에 병실에 가기위해 기성복이 맞는 게 없어 이태원에서 옷을 산다는 김달진 소장의 사모님 말씀이 생각나면서 이경성 선생은 큰 체구만큼이나 인간미와 그 품성이 넘치셨구나, 늘 그랬듯이 좁은 미술계에서 적대와 반목이 많았을 텐데도 발표자가 발표를 하면서 눈물을 지을 만큼 어른으로서 겸양을 갖추고 사람들을 품으셨구나 하는 추모의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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