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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39)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국제학술심포지엄-아시아 아방가르드 미술

이현경

학술(39)


이현경 / 미술비평 77gusrud@hanmail.net


지금까지 대형기획전하면 대부분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서구의 주류미술을 선택하여 상업적 전략을 충실히 보여주었던데 반해, 지난7월 27일부터10월 10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렸던‘아시아 리얼리즘’전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아시아 미술 그 중에서도 더 알려지지 않았던 리얼리즘 미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었던 의미있는 전시였다.


그런데 이 전시의 연계프로그램으로 지난 10월 9일(토)에‘아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에 관한 학술심포지움이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주최로 열린다고 하기에 반가운 마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날의 심포지움은 아시아 각국의 논자들을 초빙하여, 20세기 초반 19세기의 예술의 관습에 반기를 들고 혁신적인 예술의 방향을 제시했던 서구의 아방가르드 미술과는 다르게 그 시대 대부분 식민지적 상황을 겪었던 아시아의 미술이 어떠한 방향으로 서구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수용하고, 그것을 자국의 상황에 맞추어 정립해나갔는지 살펴보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프랑스어 아방가르드(avant-garde), 우리말로 전위(前衛)라고 하는 이 용어는 본시 군대용어로 전투할 때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선발대)를 뜻한다. 이러한 군대용어인 아방가르드가 예술에 전용(轉用)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의 흐름을 타고 각국에서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이 전개되면서 끊임없이 정치와 예술과의 관계가 논의되면서 부터이다. 미술사에서 러시아 구성주의 운동으로 대변할 수 있는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형식적인 혁신이 아닌 사회속에서 미술과 삶과의 새로운 관계를 도입하고 실험하려는 의식적인 시도로서 아방가르드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이와는 조금 다른 맥락으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당시의 관습과 금기를 깨뜨리고 자신의 표현이 소통되지 않더라도 실험적인 형식을 개척하여 새로운 예술의 관념을 제시하고자했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일련의 추상 미술과 같은 아방가르드 예술을 살펴볼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대부분 근대의 정치적인 혼란기가 지나고 이 아방가르드미술이 시작될 수 있었는데 서구의 아방가르드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더니즘의 시기와 같다면, 아시아의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이 끝나는 시기 또는 1960년대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한창 진행되는 시기에 아시아 특유의 복잡다난한 현대사 속에서 억압적인 기성문화에 대한 저항의 발로로 아방가르드운동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그 특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오무카 토시하루(일본 츠쿠바대 교수)씨는‘1920년대 일본의 아방가르드와 패션전략-“예술가”를 사는 대신 신생활을 만들다’에서 아시아 중 유일하게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던 일본이 근대 서구 문화와 같은 입장이라는 통로로 제복을 입기 시작하였으며, 제복은 다시 구체제에 대항하는 패션으로 예술가들의 인식에 자리잡아 1920년대의 미술흐름을 대변하는 아방가르드 이미지로 활용되었음을 설명하였다.


탕샤오빙(미국미시건대교수)씨는 ‘중국아방가르드 미술의 개념에 대해서’에서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1970년대말 등장한 미술을 보통 아방가르드예술로 보고 그들에게서 중국 특유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저항을 언급하지만 발표자는 중국미술계에 서사회주의 리얼리즘 기간의 미술들이 오히려 새로운 형식을 제시했던 기간이었다고 설명하였다.


김영나(한국 서울대 교수)씨는‘한국미술의 아방가르드 시론’에 서 1950년대 말 국전에 반발한 앵포르멜과 그 이후의 전위 그룹들의 양상과 80년대 민중미술의 양상을 다른 두 방향의한국적인 아방가르드로 살펴보고, 아무래도 이들이 미학적 독창성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들은 비서구 아방가르드미술의 공통점이 아닐까하는 논의를 제시하였다.


보이트란휀-비아티(호주울릉공대연구원)씨는 ‘베트남의 아방가르드 미술’에서 전쟁으로 얼룩진 베트남의 상황 때문에 베트남 현대미술의 자료획득이 무척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4년 분단이 후베트남공화국에서 검열을 피해 어렵게 싹텄던 모더니즘 미술을 소개하였다.


구하원(한국한국외대)씨는 ‘암리타세르길(Amrita Sher-Gil)과 근대 인도 예술가의 분열’에서인도인 아버지와 헝가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파리의 에콜데보자르에서 공부한 신여성이었던 암리타 세르길의 인물군상을 분석하였다. 발표자는 세르길의 그림이 인도인들이 표현했던 감상성에 빠지지 않고, 또한 서구인들이 표현했던 이국적 타자로 묘사되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혼종적인 정체성에서 비롯되며 그것이 아방가르드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발표와는 무관하지만 필자에게는 2007년 KBS 역사기행프로그램에서 인도의 타지마할을 차분하지만 재미있게 설명해주었던 발표자에 대한 기억이 강렬히 남아 있던지라 이 발표를 통해 실제로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가운 시간이기도 했다


* 지난 호 제목을 <현대미술사학회 제41회 추계학술발표회>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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