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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한국미술사학회 제180회 월례발표회

이현경

미술, 시대의 양식
 
이현경 / 미술비평


2011년 12월 3일(토)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미술사학회의 월례연구발표회가 있었다. 이 날의 발표 내용을 들으면서, 이성미 선생님이 인용했던 미술사가 뵐플린의 말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 참으로 적절하게 와닿았다. 이 날의 발표는 각 발표자들이 미술에는 시대의 양식이라는 것이 있고, 또 모든 미술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잉태된다는 것을 치열하게 입증하는 듯이 보였다. 발표자들에 따르면 이 날의 주제인 고려청자의 운학문, 신사임당의 초충도, 치인리마애불입상, 왕회도는 각각 고려시대, 조선후기, 신라하대, 조선말기의 특정한 시대적 원인에 의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들은 마치 사건 현장을 조사하듯이, 작품의 형태라는 결과를 두고, 치밀한 양식적 고찰을 통해 그 시대적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을 보여주어 매우 흥미진진하면서도 눈이 호강하는 시간이었다.


이혜경(충북대)씨는 ‘고려시대 청자 운학문의 양식적 특징과 변천’에서 고려시대 상감청자의 전성기와 함께 맥을 같이하여 그 중심문양의 하나로 시문된 운학문(雲鶴文)의 변화 양상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발표자는 고대의 신선사상과 종교의 영향을 받아 시문되어 온 운학문은 특히 고려시대에 학과 구름이 함께 시문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러한 도상을 시문기법, 구름과 학의 포치, 종속문, 시문된 기종 등을 통해 파악해 보면, 대략 세 시기의 특징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운학문의 변화는 시기별로 제1기는 사실성, 제2기는 의장화, 제3기는 도식화의 양상을 보인다고 하였다.
고연희(이화여대)씨는 ‘신사임당 초충도, 명성과 실상’에서 신사임당(1505-1551)의 <초충도(草蟲圖)>가 작가가 살았던 16세기가 아닌 18세기에 명성을 얻고, 유행하게 된 배경을 미술을 바라보는 시대적 인식과 회화사적 실상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발표자는 16, 17세기에는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18세기 전반기부터 모사본이 제작되면서 18세기의 양식으로 대두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의 배경에는 송시열 이후 성리학적 관점으로 만물의 가장 말단에 있는 곤충에 대한 탐구가 중시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발표자는 18세기에는 이러한 인식하에 회화사적으로 중국의 초충도를 흡수하여 참고본으로 삼게 되었고, 특히 명대의 매우 사실적이지만 모두 조합하여 그려진 초충도의 양상이 신사임당 <초충도>의 모사본에 성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지강이(동아대)씨는 ‘신라하대 합천 치인리마애불입상에 관한 연구’에서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의 가파른 산에 위치하여 그 동안 집중적으로 조명되지 못했던 신라시대의 한 마애불입상을 세밀히 검토하여 이 불상의 주변에 위치한 해인사와의 관계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발표자에 따르면 신라하대에는 비로자나불이 많이 조성되었지만, 이 불상은 수인이 1,3지를 결하고 있어 신라하대의 아미타불로 추정되며, 해인사가 화엄사상과 관련된 사찰임을 염두해 보면, 화엄사상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아미타불을 중시하였기에 이 시기 아미타불이 조성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또한 이 치인리상이 위치한 가야산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승려의 수행 및 수도처로 유명한 곳임을 고려할 때, 통상 삼존형식으로 조성되는 아미타불이 단독상으로 조성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박정혜(한국학중앙연구원)씨는 ‘조선시대 왕회도의 제작과 의미’에서 이민족의 사신들이 각국의 고유한 옷차림으로 조공을 줄지어 왕에게 바치는 성대한 그림인 <왕회도>는 우리나라에서 고종연간에 가장 유행하며, 궁중회화의 다양성을 확대해준 그림이라고 설명하였다. 발표자에 따르면 조선에서 왕회(王會)란 중국의 주나라 때, 천하가 태평하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며 중국과 이민족이 화친하는 이상적인 정치질서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그런 <왕회도>가 고종연간에 유행한 배경은 1897년 이후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대한제국시기에 고종의 통치시기를 이상적인 제국으로 그려보고자 했던 바람의 표현이며, 이 시기 그려진 <왕회도>에는 중국의 이상적인 정치공간과 조선의 현실적인 풍속이 교묘하게 어우려진 다채로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고 하였다.


자유로운 질의시간에는 늘 그렇듯이 처음에는 조용하였으나, 미술사 분야에서 너무나 유명한 선생님들이 많이 참여하셔서 앞으로의 연구에 참으로 주옥같은 코멘트들을 많이 해주셨다. 이 중 생각나는 바로는 안휘준 선생님이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자수를 잘 놓게 하기 위해 몰골법을 구사하고 강한 콘트라스트와 같은 회화 표현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신사임당 초충도가 우리나라 여성들의 자수본일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는가를 언급한 것이다. 또한 이 발표에 대해 이성미 선생님은 우리나라 고려청자 무늬같은 것을 보았을 때, 이미 16, 17세기에 신사임당의 도안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리나 선생님은 치인리상의 연구에 대해 양식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시기나 장르별로 좀 더 설득력 있는 도상을 가지고 와서 비교할 것을 코멘트 해주셨다. 이런 내용을 듣고 있자니 세대를 아울러 서로의 연구를 밀고 끌어준다는 생각에 왠지 감동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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