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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 노인을 회유하는 통치의 기술

최열

산은 삼신산의 하나요        山是三神一 

단향목은 태백의 남은 것      檀爲太白餘 

나는 천년 옛 뜻을 품고       吾將千古意 

아침 저녁으로 육현을 탄다네    晨夕六絃於


- 이형상, <단금(檀琴)>,『병와집』



중앙정부에서 파견 나온 제주목사(濟州牧使)는 제주의 통치자였다. 제주목사의 임무 몇 가지가 있는데 무엇보다 80살 이상 노인을 위하여 베푸는 양노(養老)잔치가 중요했다. 물론, 이런 행사를 오직 제주목사만 수행한 것이 아니다. 왕의 다스림이 조선 전역에 물들기를 바란 왕조는, ‘노인을 공경하고 어진 이를 존경함은 나라의 근본’이라 여겨 이를 군왕부터 적극 실천하고 또 지방수령으로 하여금 이 임무에 게으름이 없도록 하였다. 요즘 정치하는 자나 행정을 장악한 관료들의 태도와 너무도 다르거니와 배우길 바란다. 


그림 <제주양노>는 다른 행사와 달리 둥근 원형으로 좌석을 마련하고 제주목사도 건물 안이 아니라 함께 마당으로 내려와 좌석을 마련하여 노인 공경의 뜻을 드러냈다. 특히 관덕정이 아니라 제주목사의 집무공간인 동헌(東軒) 연희각과 홍화각 앞마당에 거대한 차일(遮日)을 친 행사장은 양노잔치의 중요성을 상징하고 있다. 이 행사엔 신분의 차이를 막론하고 80살 이상 183명, 90살 이상 23명, 100살 이상 3명의 노인이 모두 참가하였는데 뇌물 받은 죄를 범한 전력이 있는 노인은 배제함으로써 깨끗함을 소중한 가치로 삼음도 드러냈다. 사선으로 속도감을 연출하고 있는 차일이며, 동헌 마루에 귤나무 장식 묘사는 <제주양노>가 독창성 짙은 이 시대 회화의 걸작임을 보여주는 요소라 하겠다.


양노잔치는 처음 수령이 몸을 굽혀 절하는 예의를 갖춰 시작하고 이어 모두 다섯 번의 술잔을 올리는 과정으로 진행하였는데 처음으로 식탁이 올라가면 곡조인 <휴안(休安)>을 연주하고, 꽃을 올릴 때 잠시 연주를 중단했다가 음식이 올라가면 <수보록(受寶籙)>을 연주한다. 첫째 술잔에 <문명(文明)>이란 노래에 문관 관리가 춤을 추고 음식에 기악 <근천정(覲天庭)> 연주, 둘째 술잔에 <무열(武烈)>이란 노래에 무관 관리가 춤을 추고 음식에 기악 <수명명(受明命)> 연주, 셋째 술잔에 <오양선(五羊仙)>과 기악 <황하청(黃河淸)> 연주, 넷째 술잔에 <아박(牙拍)>과 기악 <만년환(萬年歡)> 연주, 다섯째 술잔에 <무고(舞鼓)>에 이어 통짐승을 올리면 노래 <정동방(靖東方)>을 부른다. 끝으로 왕이 물품을 하사하였으며 수령은 기름종이를 나눠주어 음식을 싸 가져가도록 하였다. 


그림의 중앙에 높은 장식을 갖춘 포구문(抛毬門)을 세우고 가야금과 거문고, 젓대[橫笛], 종적(縱笛), 장구, 북을 비롯한 여러 악기와 무희까지 무려 29명의 연주자가 출연하였는데 이는 그 어떤 행사보다도 많은 숫자이다. <제주전최>에도 북을 다루는 고수와 악기 주자들이 등장하는데 모두 15명이 출연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제주조점>에는 군사 행렬 중앙 하단에 여섯명이 줄지어 나발, 태평소, 징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제주군대의 취타대(吹打隊)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행사를 주관한 제주목사 이형상은 『악학편고(樂學便考)』, 『악학십령(樂學拾零)』을 저술하기도 한 음악의 대가였다. 오직 거문고 하나만을 달랑 들고 바다를 건넜던 이형상은 한라산 백록담에 말라죽은 단목(檀木)으로 거문고를 만들었다. 임기를 채우지도 못한 채 탄핵당해 파직으로 귀향할 때 스스로 주관했던 그 많은 행사에 천지를 아름답게 울리던 악기와 노랫가락 귓가에 쟁쟁할 제 그 작은 몸에 품은 저 백록담 박달나무 거문고를 튕기며 회한에 젖어들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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