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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 탐라도성, 사라진 천년왕국의 꿈

최열

마을엔 굶주리는 울부짖음 없어지고    邑中永絶啼飢歎 

성 위엔 야경 도는 격탁소리 없어졌네   城上曾無擊柝聲 

외론 섬 아득한 물결 속 잠들었고     孤島사茫波浪息 

앉은 채 봉화 보니 평안하다하네      坐看烽火報安平


- 유의신(柳義臣), <관덕정>, 『남사록(南槎錄)』(김상헌(金尙憲, 1570-1652) 기록)에서



그렇게도 크고 장엄하던 제주도성이 사라졌다. 지금 성곽을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남쪽 산지내[山底川] 근처에 약간 남은 제주성터뿐이다. 하지만 1928년 파괴당하기 전까지 제주도성은 지금 제주시 일도, 이도, 삼도동 일대를 감싸고 있었으며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짧아 계란형 같이 둥글되, 단단한 바위 담벼락으로 겹겹이 쌓아 그 위세가 매우 삼엄했었다. 


김남길의 그림 <제주조점(濟州操點)>에 나타나는 둥근 계란형 제주도성은 오늘날 동문로, 서문로, 남성로, 북성로라는 길로 바뀌어 있다. 남성(南城)은 남성로에서 남성사거리, 성지로를 이어 가다 제주성터를 지나 산지내를 건너는 오현교를 넘어 성굽에 이르는 길이다. 동성(東城)은 동문사거리에서 시작하는 동문로를 따라가다 북쪽으로 꺾어지는 만덕로를 만난다. 북성(北城)은 만덕로에서 서쪽으로 꺾어 산지내를 건너는 북성교를 넘어뛰자 나타나는 북성로이다. 서성(西城)은 북성로의 서쪽 끝에서 남쪽으로 꺾어 무근성로와 탑동로를 지나면 서문사거리를 만나고 계속 이어지는 서문로와 서문시장길 및 서사로로 뒤섞여 있다. 여기서 서쪽으로 향교를 지나가면 한내가 용연(龍淵)으로 바뀌어 바다로 나아간다. 


탐라왕국의 도성, 탐라도성은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이 성을 처음 건설한 탐라왕국의 태조 을나(乙那)는 천년왕국을 다스릴 왕성을 꿈꾸었다. 이렇게 만든 탐라도성은 성곽 위쪽에 두 개의 바퀴[二軌]가 굴러갈 만한 도로를 내서 기마대가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하였고, 성 아래로는 군사도로를 내서 보병대가 순찰하도록 하였다. 성 안을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눈다면 첫째 구역은 서쪽 탐라의 정궁 및 관아이다. 한양의 경복궁, 창덕궁 및 한성부 관아를 아우르는 대궐 영역이고, 둘째와 셋째 구역은 한양의 종묘와 사직, 명륜당, 모화관과 같은 여러 관청과 민가가 밀집한 영역과 같은 곳이다. 


지금 제주 이도동에 남은 제주성터는 아주 작은 흔적일 뿐이다. 을묘왜변이 있고서 400여 년이 흐른 20세기 초 통감부 설치 이래 일본은 1913년에 북문, 1914년 동문과 서문, 1918년 남성을 헐었다. 차곡차곡 헐었지만 그때만해도 성곽은 대부분 남아 있었다. 그런데 1916년부터 3년동안 제주항 확장공사 때 동부두 매립과 서부두 방파제 축조를 한다면서 해안에서 채굴한 돌만으로 부족했던지 멀쩡한 도성을 쓸고 헐어 그 돌을 바닷속에 쏟아 부었다. 남은 터는 모두 도로로 바뀌었다. 천년 왕국의 도성 파괴는 이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 일본 제국에서 파견나온 한갓 도사(島司) 따위 직책을 맡은 관리가 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조선』1928년 9월호에 실린 일본인의 「제주도 기행」에는 당시 일본 제2대 제주도사 마에다 젠지(前田善次)가 제주 개발에 대해 “나라를 위해 이 미개의 보고를 개척해야만 하는 넘치는 애정을 보여주는” 사업이라고 선전하는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근대화는 성곽과 궁궐을 파괴해야만 이뤄지는 것이었을까. 봉건왕조의 흔적이니 없애야 마땅한 일일까. 그 모습 다시 보기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만 같다. 탐라도성을 복구하는 일은 기적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제주시나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땅을 내놓는다면, 그리고 성터 위에 지은 모든 민간 소유 건물과 맞교환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오랜 옛 16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종사관(從事官) 유의신(柳義臣)이 관덕정에 머물며 탐라도성을 읊조린 그 시절 다시 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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