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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창의문, 추악한 욕망의 문

최열

허어, 너희 공훈 세웠다 뽐내지 말라     嗟爾勳臣, 毋庸自誇

그 집에 살며 그 땅 차지하고        爰處其室, 乃占其田

그 말을 타며 그 일 해댄다면        且乘其馬, 又行其事

너희와 그가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     爾與其人, 顧何異哉


- 민요, <상시가(傷時歌)>, 『인조실록』 1625년 6월 19일자


정선, <창의문>, 장동팔경 중, 32 × 29 cm, 종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역사상 가장 추악한 권력욕망을 상징하는 사건을 하나 들라면 단연코 인조정변(仁祖政變)일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쟁영웅이자 전후 국가재건을 이룩한 가장 뛰어난 군주 광해군(光海君) 이혼(李琿, 1575-1641)을 무력으로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仁祖) 이종(李倧, 1595-1649)이란 인물은 그러므로 나라를 훔친 도적이요, 왕위에 오른 뒤에는 정책을 후퇴시켰고 또 다시 전쟁의 참화를 불러일으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최악의 군주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기를 늘, 광해군은 광조(光祖)로, 인조는 다시 능양군(綾陽君)으로 환원시키는 게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다. 


창의문(彰義門)은 권력욕에 불타는 능양군이 심야에 군대를 이끌고 1623년 3월 12일 밤 홍제원에서 세검정을 지나 도성으로 진입해 들어 올 때 통과한 문이다. 도끼로 문짝을 내리친 뒤 열린 문으로 조용히 진군하여 왕이 머물고 있는 창덕궁에 이르렀다. 이미 훈련대장과도 내통해 놓았으므로 대궐문을 당당히 통과한 이들 반란군대는 왕을 폐위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무려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거나 유배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창의문은 욕망의 문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권력욕으로 더렵혀지기 전까지 창의문은 말 그대로 밝게 빛나는 의리의 문이었으며 사람들은 이 문을 자하문(紫霞門)이라 불렀다. 문이 있는 이곳 고개 아래 마을 청운동 일대가 골이 깊고 물과 돌이 많아 맑고 아름다우니 마치 개성의 자하동과 같다고 하여 청운동을 자하동이라 불렀으므로 그 위에 자리한 창의문을 자하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창의문을 나가 부암동으로 가다 보면 지금은 환기미술관이며 서울미술관이 있는데 1970년까지만 해도 부침바위라는 게 있었다. 바위는 높이 2m 쯤의 이 바위에는 겉이 벌집 모양 송송 뚫어진 것처럼 오목하게 패인 자국이 많았다. 이 바위에 다른 돌을 자신의 나이 숫자만큼 문지르다 손을 떼는 순간 바위에 돌이 붙곤 하는데 그러면 아들 낳는다는 전설 때문에 벌집 자국이 더욱 생겨났다. 돌을 붙인다는 뜻의 부침이라 부암(付岩)이라는 동네 이름도 그렇게 생긴 것이다. 그러다가 도로를 확장한다며 바위를 파괴하고 말았는데 요즘 우이동 계곡 하천을 정비한다면서 바닥의 천년 바위를 거침없이 파괴하고 정체불명의 돌을 가져다 붙여놓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만행이었다.  


부침바위가 여전하던 시절, 정선(鄭敾, 1676-1759)이 창의문을 그렸는데 영조가 창의문을 개수하고서 시도 짓고 또 정변공신의 이름을 새긴 현판도 걸어두도록 하는 이른바 창의문 현창사업에 발맞춰 그림을 그린 게 아닌가 싶다. 1740년 훈련대장 구성임이 인조정변의 일을 거론하면서 폐허가 된 창의문을 개수해야 한다고 건의하였고 영조는 이를 받아들였다. 저 구성임이란 자는 인조정변 공신의 후손이었고 영조 또한 저들에 의해 옹립된 왕이었으니까 창의문 보수는 서로의 이해에 들어맞는 사업이었던 게다. 


능양군이 왕이 된지 3년째인 1625년 6월 19일 밤 정변공신 신경진이 군사와 더불어 숙직하는 군영에 ‘격서(激書)’가 나붙었다. 격서에는 왕의 이름 이종을 거론하면서 격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므로 『인조실록』에서는 그 격서를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당시 백성들 사이에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노래 <상시가(傷時歌)> 한 편이 떠돌고 있었다고 하였다. 참으로 예나 지금이나, 보수나 진보나,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치권력놀음에 빠져든 자들 모두가 저 욕망의 문 창의문을 들락거리고 있으니 어찌 그리 한결같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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