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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청풍계 미술관, 그 비밀의 정원

최열

물 떨어지는 쪽에 낸 창문으로 흐르는 물소리 듣는데     窓臨絶磵聞流水

외로운 봉우리에 이른 길손이 흰 구름 쓸어버리네       客到孤峯掃白雲


- 김양근(金養根, 1734-1799), 「풍계집승기(楓溪集勝記)」 1766, 『안동김씨문헌록』 제3책 4권



청풍계(靑楓溪)는 지금 종로구 청운동 일부 지역이다. 인왕산에서 자하문 터널 쪽으로 흘러내리는 기슭을 이르는 이름이다. 청운동이란 조선시대 때는 청풍계와 백운동으로 나뉘어 있었던 마을인데 1914년 4월, 청풍계의 ‘청’, 백운동의 ‘운’ 두 글자를 합쳐 청운동이라고 했다. 백운동은 대체로 자하문 터널에 바짝 붙은 지역이고 청풍계는 지금 청운초등학교에 붙은 지역이다. 물론, 청운동은 자하문 길 건너 경기상업고등학교 일대도 포함하고 있으니까 예전의 박정동, 유란동 일부도 아우르고 있고 또한 청운동 지역 전체를 일러 자하동이니, 장의동이니, 창의동이니 하였으므로 자하문 터널의 좌우 양쪽을 넓게 거느리는 이름인 셈이다. 


이곳 청풍계에 흐르는 냇물을 건너기 위해 만든 다리가 있었는데 청풍교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시멘트로 덮어버려 다리는 물론 냇가도 사라지고 말았다. 아주 오랜 옛날 다리 부근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자라면서 지나치게 비범하므로 나라에서 이를 안다면 멸문의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던 부모가 억지로 죽여 버리고 말았다. 억울했던지 사흘 뒤 용마가 되어 울부짖으며 집 근처를 돌아다닌 다음, 인왕산 일대를 뛰어다니다가 칠성대(七星臺) 아래 높이 솟은 바위틈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은 허구일 뿐이지만 그렇지 않다. 청풍계의 오랜 주인은 16세기 이래 장동김문이라 부르는 명문세가였고 실제로 이들 장동김문은 인조 시대 이래 무려 250년 동안 서인 노론 당의 핵심을 이루며 때로 왕권을 능가하는 권력을 구가했으니까 용마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전설이 생겨나고 또 오랜 세월 널리 퍼져 전해지는 데는, 그 같이 인재를 끝없이 배출해 낸 가문이 실존했기 때문이다.

 

그 전설의 화신은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이란 인물이다. 장동김문의 적자인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적군에게 창고를 넘기지 않으려고 폭탄을 부여안고 죽음을 마다치 않은 불사의 전설을 남긴 주인공이다. 사실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지만, 집권당의 이름으로 충신의 반열에 오른 그는 자신의 세거지인 이곳 청풍계의 요충지 청운동 52-8번지에 집을 짓고 청풍지각(靑楓池閣)이란 이름을 붙였다. 최고의 명필 한석봉에게 글씨를 받아 새겨두었고 또한 선조 대왕께서 ‘청풍계’ 세 자를 써서 내려주시니 이를 새겨 걸었으며 남쪽 창문에는 소현세자의 시를 새겨 걸었다. 지금이야 청운초등학교 건너편 주택가로 변해버려 집터 표석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지만 이곳은 박물관이자 미술관에 방불했다. 김상용은 와유암이라 부르는 집을 짓고 명화와 고적을 양옆에 늘어두고서 즐기곤 했다. 개인 미술관인 셈인데 그 아버지 김극효(金克孝, 1542-1618)도 사미당(四味堂)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을 운영한 바가 있으니 가풍이라 할 것이다. 또한, 당대의 화가 이정(李楨, 1578-1607)과 이징(李澄, 1581-1645 이후)을 좋아해서 그들의 작품에 화제(畵題)를 쓰곤 했을 정도로 예원의 후원자로, 수장가를 자처하기도 했다. 


겸재 정선이 『장동팔경첩』을 그린 까닭도 그 후손들이 대대로 예원을 후원했던 데서 비롯한 것이다. 정선은 팔경첩 이외에도 청풍계 일대의 풍경을 여러 점 그렸는데 지금 남은 것은 4점이다. 두 점은 간송미술관, 나머지 두 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고려대박물관에 있다. 네 점 모두 특별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장동팔경첩 가운데 한 점인 <청풍계>는 경물들이 흐트러져 성글다 못해 떠들썩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사람 하나 없는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데, 수풀 무성한 정원에 그 무엇인지 모를 비밀을 숨겨두었던 때문 아닐까. 청나라 인질로 끌려가기 전 젊은 날 이곳을 방문하였을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 또한 그 기묘한 기분을 맛보았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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