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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백운동, 그 한양의 유행가

최열

내 노래 거칠어 가락 이루지 못했지만       我詞蕪捽不成腔

장차 신선의 노래 속으로 들어갈지 모르지      且可飜入瑤微音

흐르고 전해져 한양 가요 된다면           流傳便作漢陽瑤

옛 사람 마음 함께 하겠지               庶與古人同期襟


- 강희맹,  <백운동>, 『증동국여지승람』 제3편 「한성부」

 


청풍계(靑楓溪)와 백운동을 합쳐 청운동으로 바뀐 백운동은 일찍이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표현한 대로 도시 속의 밀림이라 곧 성시장산림(成市藏山林)이었다. 이 곳 백운동은 사실 자하동이라고도 부르던 땅이었다. ‘붉은 노을 속에 잠긴 마을’이라는 뜻의 자하동(紫霞洞)이란 개성의 자하동과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자하문 또는 창의문 아래쪽이 자하동이었으니까 백운동은 그보다 훨씬 아래쪽 그러니까 지금 자하문 터널에 바로 붙어있는 지역이다.


정선의 그림 <백운동> 중간에 자리 잡은 고루거각은 이염의(李念義, 1409-1492)의 대저택이다. 이염의는 1450년 재령 군수가 되어 뇌물을 받은 장리(贓吏)로 파직을 당하기도 했지만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형부라는 권세를 배경 삼아 금세 복직했다. 1492년 지중추부사가 되어 얼마 뒤 세상을 떠났으니까 평생 관직을 전전하며 호사를 누리다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이염의와 동갑내기로 강희맹, 서거정과 문명을 다투던 대학자 김수온(金守溫, 1409-1481)은 이염의 집이 있는 이곳 백운동을 다음처럼 노래했다.


“길 가는 사람은 다만 뭇 오리 푸른 것만 보는데, 이곳에 공후의 집이 여기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등 덩굴 굽어져서 뱀, 구렁이 감추었고, 돌문은 높아서 지나가는 소와 말을 가리 울만 하네. 풍악 소리 누대엔 높은 귀인들 많이 모였는데, 물과 바위에 빠져들어 성정(性情)을 수양했네. 잔치 끝나고 손님 돌아가는데, 저 산 위에 달 뜨니 한 누각 아름다운 경치 무엇이라 형용하리. 일찍이 종로거리 옛집에서 만났는데 일만 인가 비늘처럼 다닥다닥 소란하기도 하였지. 어느 해에 집을 옮겨 ‘한가한 데’로 돌아왔다. 오늘 와서 그대 만나니 웃음과 이야기 향기롭구나. 두어 이랑 아름다운 꽃 봄을 지나서 늙었는데, 연못가에 가득 늘어진 버들 비 온 뒤 길어졌네. 산야의 운치 즐겨서 조회에 참예하기 게으르나, 사람들은 장차 묘당에 들어갈 것이라 말들 하는구나.” (김수온, <백운동>, 『신증동국여지승람』제3편 한성부)


그렇다. 김수온이 묘사한 바대로 정선의 <백운동>을 보면 위쪽 바위 사이에서 계곡을 이루어 물흐름이 또렷하다. 여러 채로 이루어진 저택에 연못은 보이지 않지만, 화면 복판에 흐드러진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고 아래쪽엔 조회에 참예하기 위해 나귀 타고 나서는 선비의 모습이 부지런해 보인다. 하지만 저택은 곧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모양인데 19세기 사람 유본예(柳本藝, 1778-1842)가 『한경지략』에 지적한 대로 이 땅이 워낙 좋은 곳이라 주인이 바뀌어도 늘 “이염의가 옛날에 살았던” 장소로 기억될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이곳에는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혼인한 부마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의 집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김한신이 아들 김노경, 손자 김정희에게 대물림해 준 집은 통의동 백송나무집 월성위궁이니까 백운동 집은 김한신의 아버지로 영의정이었던 김흥경(金興慶, 1677-1750)의 집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김흥경은 숙종 때 대사간에 올랐고 경종 때 신임사화로 파직당했지만 1724년 영조 즉위로 노론 당이 집권함에 따라 도승지가 되었다. 김흥경은 당성이 강한 인물로 영조가 당파를 척결하고 하는 탕평정책(蕩平政策)을 펼치자 이에 반대하여 파직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다시 복직하여 1732년 아들 김한신을 영조의 사위로 장가보내 왕실과 인천이 됨에 이후 우의정, 영의정에 이르며 권세를 누리는 생애를 살아갔다.


백운동은 대략 이런 땅인데 김수온과 더불어 이염의와 바로 이곳에서 어울렸던 당대의 문장가 강희맹은 이곳에서 부른 자신의 노래 <백운동>이 먼 훗날 한양에 유행가가 될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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