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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여신의 산 백악산, 그 시름

최열

엇비슷 궁궐은 하늘높이 우뚝한데        參差殿閣連天氣

가끔 짓밟혀 강토 뒤흔든 적도 있었지      雜踏煙塵棬地浮

지금은 온 세상 태평하다 하지만         如今四海爲家日

그 누가 장안에서 시름을 못본다고 할까     誰道長安不見愁


- 박재화(朴在華), <한양(漢陽)>, 『관재집(觀齋集)』


김득신, <백악산>, 종이, 36.5 × 29.8 cm, 간송미술관 소장.


갑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백악산(白岳山)을 생각한다. 지난해 가을 간송미술관 ‘진경시대의 화원’ 전람회에 갔을 적 내 눈길을 오랫동안 사로잡은 단 하나의 그림이 바로 <백악산도>였다. 다가올 선거에서 누가 그 백악의 주인이 될까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이다. 김득신은 <백악산도>의 화폭 멀리 오른쪽에 삼각산(三角山) 또는 북한산(北漢山)을 그린 뒤 가까이 왼쪽에 백악산을 배치한 다음 그 사이를 야트막한 산으로 채워두었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 안개가 양옆으로 길게 흐르는 연하(煙霞)의 냇가와 북촌 기와집 마을을 숲과 뒤엉켜 그렸다. 이렇게 하고 보니 백악산이 무겁고 우뚝하게 치솟아 무너질 듯한 구도인데도 안개 강물에 둥둥 뜬 느낌이 들어 균형이 생기고 말았다. 그래도 불안했던지 백악산 뒤통수를 이루는 화폭 복판에 붉은 도장 두 개를 찍어 둠으로써 시선의 무게를 잡아두고자 하였다.


고려시대 때 남쪽의 도읍인 남경(南京)이 바로 조선시대 때 한양(漢陽)이었다. 1101년 숙종은 남경의 면악산(面岳山) 기슭에 연흥전(延興殿)이란 궁궐을 지어두고 순행할 때면 이곳에서 머무르곤 했다. 이곳이 지금 청와대가 있는 터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새 도읍을 한양으로 정할 적에 천 년을 호령한 궁궐을 지었는데 면악산 기슭의 연흥전 터가 비좁아 그 앞으로 뻗어나와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터를 잡았다. 이때는 면악산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백악산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성계가 건국한 지 네 해가 되던 1395년 12월 이 산꼭대기에 산신을 모시는 신사(神祠)를 세우면서 그 이름을 지었던 거다. 그때의 이름이 바로 백악신사(白岳神祠)였다.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면악’이란 이름이 ‘얼굴 산’이라는 식의 설명형일 뿐이므로 그런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 산의 산신 이름을 따왔다. 그 이름은 ‘백악’ 다시 말해 ‘하얀 모란’을 닮은 산신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산신은 여신이었다. 산은 조선의 왕이 머무는 궁궐을 상징하여 국토를 호령하는 진산(鎭山)이므로 그 산의 주인은 곧 진국백(鎭國伯)이 될터인데 여성이라니 말이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렇게 했다. 그러므로 백악신사에는 정녀부인(貞女夫人)의 초상화를 봉안하였고 나라에서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으며 숱한 이들이 찾아와 경배하였다. 모란처럼 눈부시게 환한 여신의 모습은 그러나 오래전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천재시인 권필(權韠, 1569-1612)이 어릴 때 그 초상화를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수십 년 뒤 권필도 유배길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권필 이후 여러 화가가 그린 백악산 그림들을 보더라도 여신은 사라지고 없다. 연꽃 닮은 여신을 암시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대체로 주름이 파인 삼각형 모양들뿐이다. 정선의 그림은 다른 군더더기 없이 온전한 삼각형으로 웅장하다. 김윤겸의 그림은 삼각형은 삼각형이되 좌우 양쪽으로 날개를 떨치며 치솟는 모습으로 장엄하고 여기 김득신의 그림은 뒤로 몸통과 꼬리를 길게 늘어뜨려 유장한 모습이다.


서울살이 삼십 년이 넘은 지금 나로서는 처음으로 백악산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되새김질하는 중이다. 지난해 새로 뽑힌 대통령이 여성이라서일 것이다. 역사 이래 처음으로 그곳 산악의 주인이 여성이고 보니 뭔가 범상치 않다. 내가 남성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미국, 중국, 일본에 둘러싸인 국제정세의 혼란 때문일까. 서울살이 삼십 년에 이처럼 백악산이 불안하고 두려운 시절은 처음이다. 문득 경남 함양 사람으로 군위에서 태어나 조선시대 말기를 살아간 선비 박재화(朴在華)가 바라보았던 불안한 <한양(漢陽)> 노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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