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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태조의 망우리고개에서 요절천재 이인성과 이중섭을 만나다

최열

그림 속 땅 지금 밟으니             畵中之境今自蹈

그림 속 뜻 잊을 수 없어            畵中之意不可忘

하얀머리되어 다시 만나는 날          白頭更有相逢日

이 그림 펼쳐두고 끝없이 탄식하겠지       握手披圖感歎長


- 이제현, <눈>, 『익재난고(益齋亂藁)』


미상, <태조 망우령 가행도>, 19세기 말, 종이, 41 × 57 ㎝,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태조 망우령 가행도(忘憂嶺駕幸圖)>는 조선을 건국한 영웅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행렬을 그린 거의 유일한 역사화다. 이 그림은 의령남씨(宜寧南氏) 가문에서 제작한 화첩 『경이물훼(敬而勿毁)』에 포함된 그림으로 지금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국가에도 없는 건국시조의 역사화가 한 가문의 화첩에 전해 내려오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이성계가 죽으면 자신이 누을 수릉지(壽陵地)가 바로 의령 남씨인 남재(南在, 1351-1419)의 묘자리였다. 일찍이 남재가 선택해 두었던 그 터는 강만국세(崗巒局勢)의 훌륭한 길지(吉地)였는데 이성계가 그 땅을 자신의 자리로 정해버린 것이다. 미안했던지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시켜 남재의 묘자리를 알아보도록 베풀기도 했다. 그러니까 의령남씨 가문은 왕실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음을 드러내고자 바로 이 <태조 망우령 가행도>를 제작했다. 화폭의 왼쪽에는 이성계가 봉긋하게 솟아오른 검암산(儉岩山) 자락 바로 아래 건원릉 터에 앉아 주위를 살펴보는 장면과 더불어 망우리 고개를 넘어 귀경하는 행렬을 그렸고, 화폭 오른쪽에는 구릉산에서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망우리공원 묘역 일대를 그려두었다. 화폭 상단 멀리로는 불암산이며 수락산이 아득하여 아름답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성계가 이렇게 자신의 수릉지를 정하고서 한양으로 귀경하는 길목의 고개를 넘을 적에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겠노라.” 하였으므로 걱정을 잊어버리는 고개란 뜻의 망우령(忘憂嶺)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오늘날 망우리고개란 이름이며 그 옆 망우리공원 묘역이란 명칭은 모두 그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는 뒷날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그 기원을 찾아가 보면 1600년 11월 9일 영의정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건원릉(健元陵)을 답사하고 돌아와 아뢰는 말로부터였다. 이 자리에서 이항복은 태조가 1394년 무학대사를 데리고 몸소 이곳에서 능침(陵寢)을 발견해 수릉지로 정했다고 아뢰었다. 하지만 당시 태조 이성계는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먼저 세상을 떠남에 지금 중구 정동을 택지하였고 또 자신의 수릉지로도 정하였을 뿐, 지금의 건원릉을 몸소 능침으로 정했다는 기록은 따로 없다. 사실은 상왕으로 물러난 태조 이성계가 1408년 5월 창덕궁 별전에서 승하하자 당시 왕위에 있던 태종이 영의정 하륜(河崙, 1347-1416)으로 하여금 태조의 능침을 보러 다니라고 하였다. 경기도 일대를 탐사하던 중 결국 6월에 지금의 건원릉을 발견하였고 태종이 바로 그곳으로 결정했다. 아마도 그곳이 남재의 묘자리였을 것이다. 이상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면 저 동구릉의 건원릉을 택지한 건 태조가 아니라 태종이었고 따라서 망우리고개란 이름도 태조의 탄식이 아니라 태종의 탄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저 망우리고개 넘어 동구릉에 누워있는 이는 태종이 아니라 태조인 것을. 


태조가 근심을 잊어버린 고개의 길목 저쪽에 동구릉이 터를 잡았고, 이쪽에 망우리공원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에 개설하여 1973년에 29,000기의 묘소가 들어섬으로서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제는 묘지라기보다는 공원처럼 바뀌었고 특히 유명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어서 그 답사를 안내하는 『그와 나 사이를 걷다』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을 정도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인물은 이인성과 이중섭이다. 전쟁의 와중에 어이없이 죽어간 이인성과 전후 난민의 세월을 살다가 참혹하게 스러져간 이중섭 두 천재 화가가 거기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의 뛰어난 문인이자 화가였던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중국의 벗으로부터 그림 한 장을 받고서 인생의 뜻을 되새기며 지어둔 시 한 편이 있다. 요절한 이인성과 이중섭이 다시 살아 돌아 올리야 없으므로 이번 가을엔 묘소에 들러 700년 전 선배 화가가 부른 그 노래 들려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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