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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국립대학 성균관에서 21세기 학문의 전당을 꿈꾸다

최열

못난 이는 숨어 살고 잘난 이는 뜻 펴나니             愚宜雌伏智雄飛

돌과 샘이 깊은 곳에 살겠다는 맹세 부디 잊지 말자        泉石幽盟愼莫違 

인정이야 본디 명예 좋아하는 법이지만              自是仁情愛名譽

나는야 잘남과 못남에 마음 안쓴다네               我於愚智沒心機


- 정경세(鄭經世, 1563-1633), <산이 답하다(山答)>, 『우복집(愚伏集)』


미상, <성균관(成均館)> -성정계첩(聖庭契帖) 중, 종이, 28 × 41.5 ㎝, 진주정씨 우복종택 소장.


국립서울대학교에선가 동문들인가가 경성제국대학 창설 몇 주년 기념행사를 한다고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제 나라 국립대학의 정통성을 식민지 일본제국으로부터 찾으려 했던 게다. 수원 임업시험장이며 군대, 철도청 박물관 관계자 일부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무슨 무슨 백 년이란 제목을 내세워 탄생일을 기념하는데 그 탄생의 주체를 엉뚱하게도 일본에서 찾으려 했던 거다.


성균관(成均館)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창하면서 설치한 국립대학인데 오늘의 대한민국이 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나라라면 국립서울대학교의 정통성은 성균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오늘날 ‘성균관’이란 이름은 사립대학에 내주고 미 군정이 설치한 ‘서울’이란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성균관은 국가 최고학문기관으로 문묘(文廟)와 명륜당을 근간으로 구성하는데 명륜당(明倫堂)은 강학하는 곳이고 저 대성전(大成殿)이 곧 문묘다. 그런데 오늘날 성균관은 이래저래 아주 딴 판이다. 그림 <성균관>은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 후손 종택(宗宅)이 소장하고 있는 『성정계첩(聖庭契帖)』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성정(聖庭)은 문묘의 다른 이름으로 공자(孔子)를 제사하는 묘당(廟堂)을 뜻한다. 『성정계첩』은 1610년 오현(五賢)을 문묘에 종사(從祀)하던 때 집사(執事)로 참예한 인물들이 그 일을 기념하려고 만들었는데 이 그림은 계첩의 한쪽이다. 오현은 무오사화 때 화를 당한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정여창(鄭汝昌, 1450-1504),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을사사화 이후 화를 당한 이황(李滉, 1501-1570)이고, 이들 오현종사 때 참예자는 정경세를 비롯하여 모두 38명이다.


오현을 문묘에 종사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전부터 네 분을 문묘에 종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했는데 이뤄지지 못하다가 퇴계 이황이 별세하자 1571년에는 이황을 포함하여 다섯 분을 종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그 뒤로도 주장은 계속되었지만, 임진왜란과 같은 국가 재난으로 말미암아 자취를 감추었다가 드디어 광해 왕이 저 다섯 분을 문묘에 종사하였다.


문묘인 대성전에 봉안된다는 것은 성인(聖人)과 현자(賢者)의 반열에 이른다는 것이다. 정조 때 공자와 더불어 5성(五聖), 10철(十哲), 6현(六賢)을 포함한 공자의 72 제자 및 현인(賢人) 그리고 조선의 18현(十八賢)까지 모두 112위(位)를 봉안하였다. 그림 <성균관>의 복판에 가장 큰 건물이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이고, 대성전 앞마당 양쪽 세로 지붕은 각각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로 현인들을 모시는 건물이다. 그림의 상단에 지붕만 보이는 건물이 강학을 하는 명륜당이다. 명륜당 앞마당 양쪽 세로로 그려놓은 건물 지붕은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학생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리고 화폭 곳곳에 울창한 나무들이 아름다운데 아마도 이것은 은행나무가 아닌가 한다. 1519년 성균관 대사성 윤탁(尹倬, 1472-1534)이 식수하여 50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아람드리를 자랑하고 있는데 그림을 그리던 무렵엔 은행나무가 여러그루 있었던 모양이다.


이곳 문묘에 모신 열 여덟명의 조선 현인으로 동무(東廡)에 설총,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서무(西廡)에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송시열, 박세채다. 그런데 그 명단은 잘 고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점필재 김종직도 빠졌고 게다가 남명 조식은 물론 성호 이익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성균관은 성균관대에 포위당해 있는 형세다. 상상해 보곤 하는데 삼성가에서 대학을 국가에 기증하여 이곳을 국립성균관대로 전환하고 국가는 이 국립대학을 대학원대학으로 개편하여 21세기 학문의 전당으로 육성해 나가는 꿈 말이다. 그 꿈을 이룩한 아주 먼 훗날 저 우복 정경세 선생이 불렀던 노래 <산이 답하다>를 읊조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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