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71)필운대에 퍼지는 화가와 시인의 꽃노래

최열

필운대 꽃 기운 서울을 압도하는데            雲臺畵氣壓城中 

화창한 봄빛은 일만 집에 넘치네             滿眼芳華萬戶同

늦은 햇볕 쪼여들어 안개 엉키고             晩照蒸深都作霧  

가벼운 티끌 고요한 바람에 잠시 멈추는구나       輕塵飛靜暫無風

귀공자들 말 몰아 북쪽에서 오는데            五陵鞍馬遙從北  

높이 솟은 두 대궐 동쪽으로 보이네            雙闕船稜盡在東  

삼십 년 전 이곳에서 봄을 바라 보았지만         三十年前春望處 

다시 만난 지금 흰머리 날리는 노인이 되었지       再來今是白頭翁


-신광수, <필운대상화(弼雲臺賞花)>, 『석북집(石北集)』


김윤겸, <필운대(弼雲臺)>, 1770, 종이, 27.7 x 38.8 cm, 개인소장.


필운대(弼雲臺)는 지금 배화여자고등학교 뒷담장 역할을 하고 있고 건물이 바짝 붙은 채 앞을 가려 감춰진 채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이곳이 저 필운대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을 적엔 장안 제일의 명승지였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 따르면 장인 권율(權慄, 1537-1599)로부터 이곳을 제 집터로 물려받은 사위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집 뒷켠 절벽에 이름을 새겨넣었는데 그게 바로 ‘필운대’였던 것이다. 그러던 언젠가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여 전후의 권세를 한껏 누리다가 탄핵까지 받았던 저 ‘성품 간악한’ 인간 홍여순(洪汝諄, 1547-1609)이 자기 집 정원을 꾸미기 위하여 기화이초(奇花異草)와 괴석진목(怪石珍木)을 구하려고 갖은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때가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이항복이 다음과 같은 말로 소문을 냈다.


“내 집에는 아침에 새벽 안개가 일어나고 저녁에 석양이 비껴들며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돌 틈에 자라있는 괴석이 있다.” 이 소문을 들은 홍여순이 와락 들떠 어쩔 줄 모르며 이항복에게 “비싼 값에 사겠다”고 달려들었다. 제안을 들은 이항복은 남산(南山) 잠두봉(蠶頭峯)을 가리키며 “저것이니 가져가시오.”라고 답해 주었다.


필운대는 실제로 이항복이 그렇게 꾸민 명승지만은 아니었다. 오랜 예부터 명승지였던 것인데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은 『경도잡지(京都雜誌)』에서 성북동 일대의 복사꽃[北屯桃花], 동대문 밖 버드나무[興仁門外楊柳], 서대문 밖 천연정의 연꽃[天然亭荷花], 삼청동 탕춘대 수석[三淸蕩春臺水石]과 함께 필운대 살구꽃[弼雲臺杏花]이라고 해서 한양 5대 명승의 한 곳이라고 했던 것이다. 또한 그 뒤를 이어 김매순(金邁淳, 1776-1840)도『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서 인왕산 필운대를 인왕산 세심대(洗心臺), 남산 잠두봉과 나란히 한양 3대 꽃놀이터(花柳遊賞)라 할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필운대를 그린 화가로 가장 뛰어난 이는 정선(鄭敾, 1676-1759)이다. 하나는 원경이고 또 하나는 근경인데 원경은 필운대에서 바라본 봄날의 꽃 천지를, 근경은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리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두 작품 모두 계절의 감각이 물씬 풍기는 서정풍경(抒情風景)이다.


그런데 정선보다 한 세대 뒤의 화가 김윤겸(金允謙, 1711-1775)의 필운대는 전혀 다르다. 먼저 화폭 왼쪽은 필운대, 오른쪽은 기와집과 인왕산을 배치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경물은 역시 바위다. 그 바위는 수직과 사선 그리고 부드러운 담묵으로 강렬함과 유연함을 아울렀다. 필운대 바위가 병풍처럼 화려하고 또 날카로운 삼각형 바위산은 하늘을 찌른다. 그다음은 무성하게 자라난 소나무가 현란한 바위를 부드럽게 흡수하여 마치 외유내강(外柔內剛)한 풍경을 보는 느낌이다. 화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위와 소나무 아래 자리잡은 두 선비 그리고 시동을 배치하고 그 아랫켠에 오두막과 오솔길 그리고 잎새가 없는 잡목과 기와집 귀퉁이를 그려둠으로써 이 풍경이 사람 사는 곳 가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심산유곡의 절경이 아니라 도성 안의 풍경임을 표현한 것이다. 김윤겸과 한 시대를 살며 안산15학사(安山十五學士)의 한 사람으로 살다가 같은 해 세상을 떠나간 시인 신광수(申光洙, 1712-1775)는 필운대에서 꽃놀이하는 마음으로 한껏 노래를 불렀는데 어쩌면 저 그림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화가와 시인 아닌가 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