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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벽오사 시회가 열린 징심정에서 유배 떠난 조희룡 선생을 그리워하다

최열

청성에서 으뜸가는 징심정에          靑城第一澄心亭

시 모임 해마다 열려 술병들고 오네       詩社年年挈酒瓶

연못 버들 헤어진 뒤 꿈을 불러 깨우느라    池柳招醒別後夢

봄 오자 또 절로 푸른가지 날리는구나      春來又自拂靑靑


- 전기, 징심시회도 화제시, <징심정에 올라 노닐다[登遊澄心亭]>


전기, <징심정 시회도(澄心亭詩會圖)>, 종이, 93.5 × 25.3 cm, 개인소장.


전기(田琦, 1825-1854)가 그린 ‘청성(靑城)에서 제일가는 정자인 징심정(澄心亭)의 시회 모임’에 대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문헌을 찾아봐도 ‘징심정’에 대한 기록이 없다. 징심헌(澄心軒)이나 징심루(澄心樓)란 이름은 보이지만 모두 경상남도 양산 또는 합천의 누정일 뿐이다. 다만 저 ‘청성’이란 지명으로부터 그 위치를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청성은 청성동(靑城洞)으로 1914년 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종로구 견지동과 관훈동에 흡수됨에 따라 지금은 사라진 이름이다. 안국동 네거리에서 종각으로 향해 뻗은 큰길 왼쪽켠 그러니까 지금 조계사 길 건너편 관훈동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작가인 전기가 살던 수송동(壽松洞)에서 멀지 않은 이웃이다. 또 다른 청성 땅이 있다. 지금 서대문 네거리에서 남쪽 서울역 방향으로 뻗은 길 왼쪽 의주로 1가 일대도 행정지명으로 청성군계(靑城君契)라 불렀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서대문 다시 말해 돈의문을 나서면 한양 성곽 밖 반송방(盤松坊) 일대인데 바로 그곳이다.


<징심정 시회도>를 보면 하단에 옆으로 길게 성곽이 펼쳐져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성곽은 한양성곽을 그린 것이고 따라서 화면상단의 산과 건물, 냇가와 다리,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은 성 밖의 풍경이므로 시내 한복판인 관훈동 쪽이 아니라 서대문 일대를 가리킨다. 지금은 풍경이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 알 수 없지만 징심사 시회가 열리던 19세기 중엽엔 서대문 밖을 나서면 만초천(蔓草川) 상류가 흐르고 경교(京橋) 다리를 건너자 곧바로 한성부 관아가 있었으며 서쪽으로 더 나가면 아현(阿峴) 고갯길이 나오고 남북 양쪽으로는 무악산 줄기가 우뚝우뚝 솟구쳐 있었다. 그림의 봉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인 듯 하다.


전기는 여러 사백(詞伯)을 모셨다고 하는데 이 그림의 화제(畫題)에서 지목한 징심정 시회 모임에 참가한 그들은 누구였을까. 이 점은 어렵지 않다. 1847년에 결성한 벽오사(碧梧社) 맹원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또 화제에서 전기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선생(先生)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그 선생은 벽오사의 좌장일 뿐만 아니라 당대 묵장영수(墨場領袖)였던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이다. 전기가 27살 때인 1851년, 조희룡 선생께서 8월 22일 전라도 임자도로 유배를 떠났다. 하염없이 늘 따르던 선생이었다. 시회가 열릴 때에도 언제나 함께 했었는데 별안간 유배라니. 더구나 그 유배의 이유가 놀랍게도 왕위계승이라는 대통(大統) 관련 이라 사족이 아니면 감히 언급조차 할 수 없는 내용을 감히 중인 주제에 나섰던 게다.


평생 헌종의 총애를 받던 조희룡이었으므로 그럴 수도 있었겠다 이해하긴 했지만 벽오사 맹원들의 충격은 너무도 컸고 해서 이들이 징심정에 모일 때면 늘 그 이야기로 꽃을 피우곤 했다. 그래서 전기는 이 그림의 화제에 “우러러 선생의 시와 술의 사이에 올린다”며 “시에 귀신이 울고, 술로 옥산(玉山)이 무너지던 그때를 떠올려 본다”고 하였던 것이다. 시회가 열렸던 징심정은 벽오사 맹주 유최진(柳最鎭, 1791-1869이후)의 소유였을 것이다. 유최진의 집은 ‘시냇가에 있었고 우물가에 늙은 벽오동이 있어 벽오사라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곳 벽오사는 시내 청석골 본가를 말하는 것이고 징심정은 별채를 가리키는 것일 게다. 의원으로 부유했던 유최진은 풍광이 수려한 한양성곽과 만초천이 어울린 이곳 무악산기슭에 별채를 마련해 두고 좋은 날이면 맹원들을 불러 모으곤 했던 것이겠다. 조희룡 선생이 자리를 비워버려서인지 그림마저 텅 빈 느낌인데 여기 모인 맹원들은 전기가 부르는 <징심정에 올라 노닐다[登遊澄心亭]>에 몸을 싣고서 봄날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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