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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천연동 주인 심사정, 반송지에서 북한산을 보다

최열

어느 곳 진경을 그렸는지 알 수 없으나          未知寫得 何處眞景

그 같음과 같지 않음은 논할 것이 아니지         其似與不似姑不睱

연기와 구름이 자욱히 피어올라 그윽히 깊고        論第烟雲暗 靄大有幽深

고요한 멋이 흐르니 바로 심사정의 득의작이라네      靜寂之趣是玄齋得意筆


- 강세황, <경구팔경3 천연동 반송지에서> 제화시


<경구팔경(京口八景) -3 천연동 반송지에서>, 1768, 종이, 21 × 15.5 ㎝, 개인소장.


하늘 못(天淵)같다던 화가 심사정(沈師正, 1707-69)의 벗 강세황(姜世晃, 1713-91)은 심사정의 <경구팔경(京口八景)> 여덟 폭에 모두 제화시를 붙였다. 이 작품에도 역시 제화시를 달았는데 그 첫 시작이 “어느 곳 진경을 그렸는 지 알 수 없구나[未知寫得 何處眞景]”였다. 사실 심사정과 가까이 어울려 노닐던 강세황으로서는 그 풍경이 한양 땅 어느 곳인지 모를 턱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강세황은 그 구절에 이어 “그 같음과 같지 않음은 논할 것이 아니다[其 似與不似姑不睱]”라고 했던 것이겠다.


그렇게 하고 보니 25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정말 그 풍경 어딘지 모호해지고 말았다. 대체로 실경을 그린 화가들은 그림에다가 지명을 써넣었다. 그런데 유독 이 <경구팔경>만은 지명을 써넣지 않았고 또 제화시를 쓴 강세황도 어느 곳을 그렸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 <경구팔경>의 창작의도인 것처럼 지명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구팔경>은 언젠가 흩어져 지금은 네 폭만 남았는데 네 폭 모두 어느 곳을 그렸는지 알 길이 없다. 왜 그랬던 것일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한양의 명승지를 읊은 한양팔영(漢陽八詠), 한양십영(漢陽十詠)이며 남산팔영(南山八詠)을 보면 짐작이 가는데 섬세한 지명이 없더라도 대개 알만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경구팔경> 네 폭을 그윽이 살펴보았다. 어디선가 본듯한 풍경이 떠오른다. 그 가운데 세 번째인 이 작품을 헤아려 보자. 멀리 치솟은 산은 안산과 무악재로부터 북쪽으로 이어지는 북한산까지 그 일대를 압축한 풍경이다. 화면 중단의 작은 산은 금화산(金華山) 줄기를 타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무악재 어간이고 그 아래쪽 마을 풍경은 반송지(盤松池)에서 북쪽을 바라본 풍경이다. 반송지는 예로부터 경도십영(京都十詠)의 한 곳으로 명승지였다. 연못가에는 천연정이며 기우 제단이 있어서 그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아울러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인 1929년에 연못을 메꾸어버린 뒤 공립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 이름을 일본공사 죽첨진일랑(竹忝進一郞, 다케조에 신이치로)의 이름을 따 죽첨공립학교라고 하였으며 해방 뒤에는 뒷산인 금화산 이름을 따서 금화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1764년 9월 18일 4검서(四檢書)의 한 사람이자 한학4대가(漢學四大家)로 이름을 떨친 이덕무(李德懋, 1741-93)가 이곳엘 찾아왔다. 그런데 이덕무는 그 아름다운 풍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심사정의 집에 이르렀다. 심사정의 집은 반송정의 북쪽 기슭에 있었다. 그때 심사정 집 풍경을 이덕무는 『관독일기(觀讀日記)』에서 다음처럼 묘사했다.


“초가가 쓸쓸한데 동산의 단풍나무와 뜰 앞의 국화는 무르익고 아담한 그 빛깔이 마치 그려놓은 듯하다” 


이 그림은 이덕무가 찾아온 뒤 4년이 지난 1768년 어느 날 그린 것이다. 그림에는 반송지가 보이지 않는데 화가가 반송지 위쪽 천연동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북쪽의 풍경을 그렸기 때문이다. 경구팔경이라면 당연히 경도십영의 한 곳인 반송정을 화폭에 그렸어야 했음에도 심사정은 그럴뜻이 전혀 없었다. 반송지라는 명승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 반송지에서 보이는 풍경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고 또한 반송지에 섰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훨씬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뜻을 알아차린 강세황이었기에 같음과 같지 않음 따위를 따지지 않고 음미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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