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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검정 앞 냇가가 빨래터라니

최열

부수어진 빈터에 묵은 먼지 속을 찾노라니        碎磼遺墟問劫塵

현도관에 복숭아나무 심던 봄날 생각나          玄都猶憶種桃春

누각 앞 한 그루 나무만은 그대로니           樓前獨樹依然在

그때 난간 기댄 사람들 능히 기억하겠지         能記當時倚檻人

 

- 이항복, <독서당 옛터에서>, 『백사집(白沙集)』


권신응, <북악십경 세검정(洗劍亭)>, 1753, 종이, 41.7 × 25.7 cm, 개인소장.


유본예(柳本藝, 1778-1842)는 『한경지략( 漢京識略)』에서 세검정에 대해 “매년 장마철 물이 불을 때 성 안 사람들이 나가서 구경한다”고 기록했다. 또 거슬러 올라가면 동령폭포(東嶺瀑布)가 있다고 했다. 어디 동령폭포 뿐이겠는가. 승가사(僧伽寺)도 있고 또 백석동천(白石洞天)도 있다. 세검정 바로 앞 개울물인 세검천(洗劍川)은 이곳 세검정을 기점으로 그 상류가 세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구기터널 쪽이고 또 하나는 북악터널 쪽이며 나머지 하나는 백악산 쪽이다.


첫째, 구기터널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승가사가 있는데 신라 수대(秀台)스님이 당나라 승가대사를 기려 창건한 절이다. 신라와 당나라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절이다. 둘째, 북악터널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보현봉과 형제봉 사이 평창계곡에 있는데 우물골이 있고 그 높이가 서너 길이나 되는 폭포가 하나 있다. 이 폭포를 향림폭포(香林瀑布)라 하는데 발원지인 보현봉 동쪽에 있다 해서 동령폭포라 부르기도 한다. 셋째, 백악산 북쪽 기슭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흔히 백사실 계곡이라 부르는 백석동천이 있다.


그 가운데 백석동천이 유난스럽다. 10년 전만 해도 버려진 폐허였지만 ‘백석동천’이라는 굵은 각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을 정도라며 빼어난 명승지를 재발견했다고 들뜬 가운데 근래에는 조선시대 정원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이 바로 이곳이라 해서 문화재를 재발견했다며 복원 여론이 드높다. 백석동천이란 이름의 유래는 돌이 많은 백악산 기슭이라고 해서 그런 것이다. 또 이곳엔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의 별장 백사실(白沙室)이 있는데 건물은 사라졌지만 각 건물의 기단이라든지 연못 같은 유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항복은 권율(權慄, 1537-99) 장군의 사위이자 임진왜란을 극복해 나간 지혜로운 재상이었으며 특히 흥미진진한 재치로 가득 찬 ‘오성과 한음’ 가운데 한 분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항복이 언제쯤 이곳 세검정 윗마을 백석동천의 주인으로 들어앉았는지 그리고 언제 떠났는지 알 수 없다. 백사실에 관한 내력을 담은 기문(記文) 한편 지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白沙集)』을 보아도 백사동천을 읊거나 바로 아래 명승지인 세검정을 노래한 시 한 편 남겨두지 않았다. 그런 그의 향기가 배인 백사실이 여기 자리 잡고 있는데 그저 그 사람의 향기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이 조선시대 정원의 정수를 보여주는 백사실을 그대로 복원한다면 참으로 뜻깊은 명승지이자 유적지로 재탄생할 것만 같다.


백사동천을 타고 조금만 내려오면 곧바로 세검정이다. 권신응(權信應, 1728-86)이 그린 <세검정>은 할아버지뻘 선배 정선(鄭敾, 1676-1759)이나 일백 년 뒤의 후배 유숙(劉淑, 1827-73)이 그린 세검정과는 크게 다르다. 권신응의 세검정은 세검천을 상하로 나누어 위쪽에 한양성곽이 보이는 백악산을 가파르게 그려두었고 그 아래쪽 냇물의 발원지인 백사동천부터 일직선으로 흐르는 세검천을 그려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상단에는 풍류를 즐기는 선비를, 하단에는 빨래하는 아낙네를 배치해 둔 점이다. 명승지 특히 북악십경과 같은 승경을 그리면서 여성을 등장시키는 예도 없고 더구나 빨래하는 모습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는 작품이다. 더구나 세검정은 피 뭍은 칼을 씻거나 사관들이 사초(史草)를 씻어 내거나 학동들이 바위에 글을 쓰던 붓을 씻는 곳으로 알려졌었는데 말이다. 백석동천에 들러 아래쪽 세검정을 바라보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조선 초기에 잠시 독서당으로 썼던 장의사(藏義寺) 터에 들렀을 적 읊은 <독서당 옛터에서>인데 이래저래 시절이 수상하기 그지없는 요즘의 마음처럼 무척이나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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