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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황 <양주 송추>

최열

가을 내내 쌀쌀한 기운 느낌 좋은데 

밤새도록 미친바람 사방에 가득하구나 

어찌하면 찬 벼랑 오랜 소나무처럼 

푸르고 푸르러 눈서리조차 두렵지 않을까 


- 유몽인, <과풍계(過楓溪)>, 『어우집(於于集)』



고려의 위대한 학자 이색(李穡, 1328-1396)이 개성에서 한양으로 말타고 내려가며 양주(楊州)에 이르러 살펴보았다. 그 생김이 마치 ‘세 봉우리가 하늘에 꽂힌’ 듯 하므로 이색은 ‘삼령삽천(三嶺揷天)’이라 읊었다. 조선의 도읍을 감싼 병풍처럼 북동쪽으로 펼쳐진 고을 양주는 1980년 남양주와 나뉘어 동쪽을 모두 잃었지만 소라산(所羅山)에서 회암령(檜巖嶺)을 넘어 불국산(佛國山), 도봉산(道峰山)으로 이어지니 삼령삽천의 위엄과 기개를 잃기는커녕 더욱 날카롭다. 이런 양주 서남쪽 끝 소나무[松], 가래나무[楸] 가득한 송추(松楸)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도봉산과 북한산 일대가 장관이다. 정선(鄭敾, 1676-1759)의 손자 정황(鄭榥, 1737-19세기 초)이 바로 이 곳 풍경을 그렸는데 <양주 송추(楊州松楸)>다. 


얼핏 보면 빼어난 산수화 한 폭일 뿐이지만 꼼꼼히 들여다 보면 희귀할 뿐만 아니라 기이(奇異)하여 신비롭기까지하다. 화폭 중단 낮은 산줄기를 온통 채우고 있는 무덤 앞 비석들이 그러하고 또 화폭 왼쪽에 우뚝선 도봉(道峰) 바위를 두부 썰 듯 잘라낸 모습도 간단치 않다. 반쪽이라고해도 우람하기 그지없는 도봉을 꼭지점으로 삼아 산 줄기며 나무와 도로가 부채살처럼 퍼지는데 이런 모습도 낯설다. 


맨 위쪽 북한산 능선으로 설정한 첫째 부채살을 보면 줄지어 선 바위들이 모두 망자(亡者)의 넋 같으니 머리를 숙이고서 도봉 바위쪽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세 번째 부채살인 산줄기는 화폭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비석이 즐비하다. 게다가 줄지어선 노란색 단풍 든 가래나무[楸子木] 행렬은 네 번째 부채살이요 그 옆 시원스레 뚫린 도로는 다섯 번째 부채살을 이룬다. 심지어 하단 도로 옆 나귀 탄 행인조차 여지 없이 도봉 바위를 향하고 있으니 대체 화가는 왜 이런 구도를 만들어낸 것일까.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도봉은 부용화(芙蓉花) 활짝 핀 천국의 문이요, 반대 편의 한양(漢陽)이 먼지로 물든 속세인 까닭에 한양으로부터 등돌린채 도봉으로 향하는 뾰쪽바위들은 혼령이요, 화가 스스로는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저 무덤 속 숱한 망자를 이끄는 저승사자라 여겼을지 모르겠다. 


서울 불광동(佛光洞) 박석고개를 넘어 한참을 가다보면 일영(日迎), 송추(松湫)를 만난다. 이곳 장흥면(長興面) 동쪽 일대는 워낙 풍수(風水)가 빼어난 길지(吉地)라 류판서니 정판서, 신판서 묘소가 즐비하다. 무덤에 성묘(省墓)하는 사족들이 가마타고 드나들어 가마골이라 부를정도요, 상여(喪輿)에서 송장이 굴러 떨어져 송장골이라 부를 정도였는데도 오늘엔 아름다운 경치 탓에 유원지로 바뀌고 말았다. 좋은 곳이면 사람 살기도 좋을터인데 죽은이의 안식처요 유람객의 놀이터라 아무래도 나그네나 귀신이나 좋은 풍경 즐기기는 매양 같은 모양이다. 지금도 송추엔 장흥면 북쪽 돌고개라 하는 석현(石峴)에는 권율(權慄, 1537-1599) 장군 묘소가 있고, 남쪽 삼하(三下)에는 위대한 학자 이수광(1563-1628) 묘소가, 일영에 중종(中宗, 재위 1506-1544)의 왕비로 폐위의 비운을 겪은 단경왕후(端敬王后, 1487-1557) 능묘인 온능(溫陵)이 있다. 하지만 화가는 이들 셋만이 아니요 은하수 처럼 많은 묘소들을 새겨놓았는데 이곳 일영과 삼상(三上) 마을이 내시(內侍)들의 세거지(世居地)였음을 떠올린다면 이 그림은 필시 이름없는 이들의 영혼을 위한 진혼곡 아니었을까. 화폭 오른쪽 끝 맨 아래 기와지붕 정자는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 폐위를 반대하다 파직당한 뒤 송추동 소나무 숲 울대(鬱垈)에 은거하던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송천정사(松泉精舍)가 아닌가 싶다. ‘향기로운 난초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인목대비 옹호하며 ‘죽음이 도리어 영광’이라던 설화(說話) 문학의 거장 유몽인은 끝내 사형 당했지만 단경왕후 잠든 이웃 송추에 머물며 구비구비 끝이 없음울 한 시절의 노래향기 너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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