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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도(道)를 깨우친다는 도봉산에서 불의한 진보, 불의한 보수를 향해 묻는다

최열

하늘 닿은 도봉산 푸르디 푸르니            參天道峰靑
두루 돌아보며 나그네 시름푸네             歷覽舒孤羈
가을 강은 붉은 비단 수놓았고              秋江綉紅錦
가을 풀은 온통 어지럽게 날리네            秋草長離披
강과 산은 이렇게도 빼어나건만             江山縱奇絶
늙은 이 사람 시로 읊지 못하네             老夫不能詩

- 남효온, <도봉산>, 1481,《 추강집(秋江集)》



이인문, 도봉산 사계01춘경, 종이, 26.5×33.3㎝, 개인소장


도봉산은 백두대간에서 한북정맥으로 내려와 철원, 포천, 양주를 거쳐 서울을 향해 치솟아 오른 봉우리다. 도봉산엔 세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르는데 선인봉(仙人峰)과 만장봉(萬丈峰) 그리고 그 바로 뒤편에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자운봉(紫雲峰)이 740m의 높이를 뽐낸다. 이 세 봉우리는 천축사 뒤쪽이다. 세 개의 봉우리를 묶어보면 닭 볏같이 생겼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부용꽃, 연꽃 봉오리와도 같다고도 했으며 또 누군가는 사슴뿔 무리와도 같다고도 했다. 

어찌 생겼건 673년 신라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멀리 노원벌판에 도착했을 때 목격한 그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발걸음을 멈추어 머물며 천축사를 창건하셨던 것이겠다.

그러나 그 멋진 세 개의 봉우리보다 먼저 그 북쪽 망월사 뒤편의 거대한 봉우리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 예부터 이름하여 도봉(道峯)이라 부르는 곳이다. 요즘 지도에 ‘원도봉산’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곳을 보면 그 기슭에 망월사가 자리 잡고 있다. 망월사는 천축사보다도 35년 전인 639년 선덕여왕이 통치하는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해호화상(海浩和尙)이 창건한 절이다. 산악의 상서로움을 의상대사보다 앞서 발견한 이가 있었던 게다.

한양에 도읍하려는 이성계를 따르던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이곳 도봉산에 이르렀을 때 저 해호스님이며 의상대사가 느꼈을 기운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또한 신비롭기 그지없는 산악의 세력을 한눈에 알아챘을 것이다. 천년왕국을 꿈꾸며 세운 조선왕조가 번영했던 까닭이 바로 이 도봉의 맑은 정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천 년을 다 못 채운 것은 도봉의 산줄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 강원도 철원에서부터 그 세력의 높낮이가 극심하다가 도봉에 이르러서 절정을 이룬 뒤에야 멈추는 형세다. 바로 철원에서 도봉까지 거리가 오백 리라, 왕조도 오백 년 만에 멈추었다는 게다. 

이곳을 잘 아는 사람들은 예부터 도봉산을 경기의 금강(金剛)이라 불러왔다고 하는데 참으로 날카롭게 각진 온갖 형상이 기이하고 신비롭다. 그렇다면 왜 그 이름을 길 도(道)란 낱말을 붙여 도봉이라고 지었을까. 다만 이곳에서 조선왕조의 길을 열었으므로 그랬다거나 또는 숱한 이들이 품어야 할 뜻을 세우고 가야 할 길을 깨우쳤다 해서 도(道)의 봉우리라 했다고도 한다.

이런 세상을 견디고 싶을 적이면 나는 이곳 노원 벌판에서 저 도봉을 바라본다. 내가 35살 때 노원 벌판으로 들어와 처사를 꿈꾸며 성시산림(成市山林)을 자부한지도 어언 30년이다. 그 세월 동안 군부독재 정권이 끝났고 민주화 시대가 열렸지만 거꾸로 정의로움은 사라졌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권력을, 자본가와 그에 기생하는 시민사회 무리들은 재화를 향해 탐욕을 꿈꾼다. 그 욕망은 보수와 진보는 물론 세대를 가리지 않고 넘실댄다. 

2017년 5월 9일 깊은 밤 대통령 당선 유력자 문재인은 소감에서 여러차례 ‘정의’라는 낱말을 되새겼다. 그렇다, 학창시절 꿈꾸었던 정의로운 세상을 일궈나가길 진심으로 당부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나라에서 정의로운 진보와 보수가 불의한 진보와 보수를 이기게 해달라고 저 도봉을 향해 간절히 소망하겠다.

오백 년 최대의 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눈물을 뿌려대며 저 낯설고 머나먼 남도 땅 강진으로 유배 갈 적에 월출산을 마주하고서 읊은 노래 <탐진촌요(耽津村謠)> 첫수엔 “달빛 남쪽 향해 월출산 보지 말게, 봉우리마다 모두 도봉산 모양이니[峰峰都似道峯尖]”라고 했다. 유배길에서조차 도봉의 저 가야 할 도를 깨우치고자 함이었을까. 

생육신의 한 분이자 위대한 시인인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92)은 이곳 노원을 가로지르는 중랑천 변을 걸으며 도봉산을 보고서도 차마 노래하지 못했다. 그렇다. 어찌 말로 그것을 다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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