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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한양, 그 완전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최열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까 말까 하여라
- 김상헌, <삼각산>,『 청음집(淸陰集)』



미상, <도성도>, 『동국여도』, 종이, 47×66㎝, 19세기 전반, 서울대 규장각 소장.

 하늘을 나는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서울 풍경은 중심과 주변이 없는 거대한 평판일 뿐이다. 지도를 봐도 그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옛사람들이 만든 지도는 그런 평판이 아니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1804-66)가 만든 『동여도』 가운데 한양을 그린 <도성도(都城圖)>는 둥그런 한양성곽의 테두리를 화면에 꽉 채워 원형의 세계를 연출해 놓았다. 게다가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아예 복주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귀엽기까지 하다. 

더욱 놀라운 지도가 있다. 회화처럼 보이는 지도다. 서울대 부설 규장각에 소장된 『동국여도(東國輿圖)』에 한양과 그 일대를 그린 여러 폭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도성도(都城圖)>와 <도성 연융 북한합도(都城鍊戎北漢合圖)>는 김정호의 그것과 달리 한 폭의 그림이다. 사람이 구름 위로 올라가 새의 눈으로 내려다본 한양은 한 폭의 눈부신 산수화다. 중심과 주변이 뚜렷하고 울퉁불퉁 들쭉날쭉한 것이 우리 눈길을 이리저리 유혹한다.

<도성도>는 한양도성 안팎을 그렸고 <도성 연융 북한합도>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묶어 하나의 권역으로 구성했다. 두 작품 모두 달걀처럼 중심과 주변을 나누었는데 <도성도>는 노른자위가 한양성곽 하나고 <도성 연융 북한합도>는 노른자위가 한양성곽, 북한산성 두 개인 쌍란 형으로 만들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둥그런 타원형이다. 그래서인지 한양과 그 주변이 마치 소우주처럼 완전체로 보인다. 특정 대상을 하나의 소우주로 묘사한 타원구도의 대표 사례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여러 폭의 금강산도 가운데 호암미술관 소장의 <금강전도>를 들 수 있다. 

한양이라는 우주는 바깥으로 여러 겹의 산줄기 그리고 강과 내가 빙 둘러싸고 있으며 안쪽으로는 한양성곽이 마지막 테두리를 이루고 있다. 성 안으로 궁궐 및 관청 그리고 숱한 민가가 도로와 하천 사이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서대문과 남대문을 잇는 성곽 밖으로도 가옥이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 특별한 것은 바로 빨간색의 관청 건물보다도 민간 가옥이 광범하고 충실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아름다움은 도성을 감싸고 흘러내리는 겹겹의 산줄기와 줄기를 타고 연이어 솟아오른 봉우리의 율동감에서 비롯 하는 것이다.

<도성 연융 북한합도>는 복잡한 제목에서 보듯 한양성곽과 연융대 그리고 북한산성 세 곳을 한 화폭에 모았는데 오히려 < 도성도> 보다도 단순해서 깔끔하고 산줄기, 물줄기가 훨씬 크고 검은색 봉우리도 눈에 확 들어온다. 세부와 전체를 아우르는 완벽한 섬세함과 온갖 경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넘치는 활력이 돋보인다. 그래서 이 두 폭은 한양과 북한산을 그린 가장 아름다운 회화이자 마치 은하 세계와도 같은 소우주의 완전체라 부를 수 있는 작품이다. 

내가 이곳 한양에 보금자리 틀고 산 지도 1983년부터니까 어언 서른 다섯 해째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심화 속에서 사회는 양극화의 가파른 균열이 일렁대며 파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곡절의 삶을 살면서 성시산림(成市山林)의 태도를 지키고자 무던히 애를 썼고, 뜻한 바 이루려고 숱한 세월을 쏟아부었지만 덧없음이야 하나도 바뀐 게 없이 그대로다. 

그보다도 가슴 저린 것은, 태평양전쟁에 희생당한 위안부의 아픔을 돈 몇 푼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은 저 옛 대통령의 합의였다. 그것을 원천무효함으로써 1637년 4월 병자호란 끝에 노예로 끌려간 수십만 백성들의 신음과 또 함께 볼모로 잡혀간 조선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부른 서글픈 이별의 노래가 더는 들려오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여 한양이, 조선이 저 그림처럼 아름다운 완전체가 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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