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3)정선 <이수정> - 흔적도 없는 풍경

최열

서산에 와 보니 지난날 듣던 것과 다른데 身到西山過昔聞

옥인지 구슬인지 분별하지 못하겠네      瑤林瓊島杳難分

얼음같은 넓은 호수 옥을 펼쳐놓은 듯    氷湖百頃平鋪玉

단청누대 우람하여 구름 위로 솟았구나   彩閣千重聳出雲 


- 강세황, <서산(西山)>, 『표암유고(豹菴遺稿)』



여의도 서쪽 끝에서 노들길 따라 선유도를 바라보며 가다가 염창교 아래 인공폭포를 지나 양화교를 건너면 이수정(二水亭) 길이 있고 조그만 이수공원이 있다. 지하철 염창역 바로 북쪽이다. 지금 그렇게 이름만 남아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데도 정선(鄭敾, 1676-1759)의 <이수정> 풍경은 어찌 저리도 뚜렷한가. 화가는 한강 가운데 새처럼 허공을 나르며 남쪽을 보았다. 맨 먼저 두 폭 돛을 단 나룻배가 보이고 강가엔 네 그루 버드나무 건너 마을이 옹기종기 숨어있다. 오른쪽 골따라 계단 길 숨가쁘게 걸어 오르니 반듯한 기와집이라 그게 바로 이수정이다. 정작 봉우리는 얕으막한 도당산(都堂山)인데 정자를 가파른 절벽 위에 올려놓아 깊은 산중 절집처럼 묘사하고 보니 과장이 지나치다. 그래서였을까. 화가는 멀리 남쪽 관악산(冠岳山) 줄기를 푸른빛으로 그려 넣고 도당산 바로 뒤엔 치솟은 봉우리를 배치해 두었다. 아마도 봉천동과 상도동 경계를 이루는 국사봉(國思峰)일 게다. 국사봉은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세자를 물려주고 이곳에 올라 경복궁을 바라보며 아우 세종(世宗)의 치세를 걱정해 주었다는 곳이므로 화가가 그 사실 알고 저토록 우뚝 솟은 모습으로 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양녕대군의 아우 효령대군(孝寧大君)은 형 양녕대군을 따라 다시 아우 세종에게 세자를 물려주고 전국 각지의 사찰을 새로 지으며 생애를 아름답게 가꾸어간 왕자였다. 어디 그뿐인가. 1424년 홍제천을 끼고 솟은 성산 아래터에 망원정(望遠亭)을 지은 효령은 다시 강 건너 남쪽에 안양천(安養川)을 끼고 솟은 도당산에 바로 정자를 지어 한강을 건너갔다 건너오는 절정의 풍류도 누렸다. 효령은 언젠가 안양천이 흘러들어 한강과 부딪히는 염창탄(鹽倉灘) 옆 도당산 꼭대기에 정자를 짓고 한가할 때를 만들어 여울지는 물결을 누리곤 했다. 효령은 외동 딸에게 정자를 물려주었는데 그렇게 이덕연(李德演, 1555-1636) 가문의 소유가 되었고 이덕연은 안양천과 한강이 합치는 두 물길을 지켜 보며 정자 이름을 이수정이라 하였던 것이다. 1618년 1월 광해 왕이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또 대북당(大北黨)이 집권하자 소북당(小北黨)인 이덕연은 강원도 철원으로 물러나 은거하였다. 하지만 아우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은 왕의 뜻에 충실한 신하로 거듭 승진하여 어느덧 도승지에 이르렀을 때인 1623년 3월 서인당(西人黨)이 능양군(綾陽君)을 앞세워 정변을 일으켰다. 이덕형은 광해의 신하답게도 능양군에게 ‘옛 군주를 죽이지 말 것’을 주청함에 능양군은 충신이라 이르고 이에 다시 이덕형은 정변을 의심하는 인목대비에게 보고하여 능양군에게 어보(御寶)를 내리도록 하였다. 옛 군주와 새 군주 모두에게 공훈을 세운 슬기로움에 한성부판윤으로 재직하던 1624년 1월 이괄의 난을 진압할 때 공을 세웠으니 이덕형은 서인정권 아래서도 인조(仁祖)의 비호를 얻어 관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변 뒤 은거를 끝내고 관직에 복귀한 이덕연은 다시 이곳 도당산에 이르러 정자를 새로 고쳐 이수정이라 하였다. 한가할 때면 아우 이덕형도 이곳에 어울렸을게다. 형제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어느날 이덕형은 그 풍경 노래하기를 ‘베개 밖 먼 종소리 절집은 가까운데 문 앞 큰 나무엔 물새가 둥지를 트고 넓은 땅엔 여염집 가득한데 아득한 천년 그대로구나’라 하였다. 그로부터 일백년이 흐른 1742년 화가 정선이 이곳 이수정을 지날 때에도 그 풍경 그대로였지만 다시 백년이 흘러 1876년 개항을 앞 뒤로 한 언젠가 낡은 정자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도당(都堂)을 지었다. 지금은 그도 저도 흔적조차 없으니 천년은 무슨, 순식간에 부숴버리는데 4대강 파헤치는 힘이 그런 것이려니 사람의 힘이란 이처럼 두려운 것이다. 


소북 명문가 출신으로 당대 예원의 총수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자라면서 이덕연, 이덕형 형제를 먼발치에서 봤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당파에 속한 인물이니 더욱 그러할지 모르겠거니와 처가가 있는 경기도 안산에 다닐 때면 혹 이곳 양화나루 건너는 길에 이수정에 들렀을지도 모른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