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5)홍지문의 안과 밖, 권섭과 정선의 우정

최열

겸재옹과 옥소노인 함께 늙어 가는데          謙翁玉老共衰遲

슬픔과 기쁨 나누려하나 멀리 떨어져 원망스럽구나   各說悲歡悵遠離

한가한 여가에 신의 손 같은 필법 빌려와        欲借餘閑神手筆

물소리 들리는 날 상대하니 온 몸 떨려오네       犁然相對水聲時


- 권섭, <정선에게[寄鄭元伯]>, 『옥소고(玉所稿)』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길의 북쪽 끝 자하문(紫霞門) 터널을 지나 가다보면 삼거리 정면 비탈에 상명대가 우람한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쪽으로 틀면 탕춘대(蕩春臺)와 세검정(洗劍亭)이고 왼쪽으로 틀면 홍지문(弘智門)과 오간수문(五間水門)인데 세검정에서 홍지문으로 흐르는 냇가는 홍제천(弘濟川) 상류다. 홍지문과 오간수문은 탕춘대성(蕩春臺城) 성벽을 뚫고 세운 문인데 홍지문으로는 사람이 출입하게 하고 바로 옆 오간수문으로는 물이 흐르게 하였다. 오간수문은 동대문 옆 오간수문과 구조가 같은 다섯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도를 방위하는 목적에 따라 물길로 몰래 출입하려는 사람을 통제하려고 만든 수문이다.


옥소(玉所) 권섭(權燮, 1671-1759)의 뜻을 따라 그린 <홍지문-수문루(水門樓)>는 <북악십경(北岳十景)> 가운데 한 폭이다. <북악십경>은 세검정부터 옥류동과 삼청동에 이르는 명승지를 그린 작품으로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손자 권신응(權信應, 1728-1786)이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권섭은 만년에 손자로 하여금 자신이 꾼 꿈을 일러주고 그리게 하였는데 <몽기(夢記)> 47점의 절반가량을 권신응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몽기>와 <북악십경>의 그림이 모두 비슷하다. 아마도 권섭이 손자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일러주고 그대로 그리게 하였던 모양이다.


<홍지문-수문루>는 홍지문을 하단에 배치하고 홍제천 상류를 따라 올라가다가 세검정을 숲에 가려두고서 문수봉(文殊峯)을 맨 상단에 두었다. 홍지문은 다른 이름으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불렀는데 문 안쪽 나귀를 탄 선비 일행 셋이 있어 혹 성 안 둘은 할아버지 권섭, 손자 권신응 일행이고 성 밖 하나는 정선(鄭敾, 1676-1759)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권섭은 명문세가 출신이었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은 채 생애를 예술로 일관한 산림처사였으며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삼연문하(三淵門下)에 드나든 인물이다. 젊은 날 삼연문하의 인물들 특히 정선과 가까이 하였는데 스스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정선을 칭찬하고 부러워하곤 했던 애호가이기도 했다.


또한 정선도 홍지문과 주변 경치를 수평구도 안에 배치하면서 을(乙) 자 모습의 흐름으로 빠르게 변화해 나가도록 속도감을 살려낸 <홍지문-수문천석(水門川石)>을 제작했다. 상단에 흙산이 둥글게 봉긋하지만 멀리 문수봉이 우람한데 사선으로 흐르는 홍제천이 오간수문에 이르면 급격히 방향을 틀어 폭포처럼 쏟아진다. 왼쪽으로 버드나무 숲 사이 초가집이 아늑한데 오른쪽으로 인왕산 바위가 험준하게 버티며 서로 경쟁하듯 탕춘대성 성벽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긴장감을 드높이는 것이다. 홍지문 밖 갓 쓴 선비가 문 안에 처사와 함께 초가집 방안에서 그림 그리는 주인을 보러 가는 길일까.


그런데 이 탕춘대성은 1637년의 병자호란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1702년 우의정 신완(申琓, 1646-1707)이 병자호란 때를 거론하며 바로 이 탕춘대성을 새로 건설할 것을 발의하였다. 이에 찬반 논란으로 세월을 끌다가 1718년 윤8월에 착공하여 1719년 3월에 완성하였다. 감격한 숙종은 스스로 ‘홍지문ʼ이란 글씨를 써 주어 편액을 달았는데 ‘넓은 지혜[弘智]ʼ라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병자호란과 같은 오랑캐의 침략으로부터 지켜줄 슬기로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그러니까 권섭의 나이 49살, 정선의 나이 43살 때 완공한 홍지문과 오간수문은 어쩌면 오랑캐의 침략을 상기하는 상징이요 새로운 명물이어서 뭇 시선을 사로잡은 건축물이었을 것이므로 권섭은 이 홍지문을 ‘북악십경ʼ의 하나로 지정했던 것일게요, 정선 또한 그를 따라 이토록 강건한 성벽을 그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권섭은 뜻을 함께 한 정선을 칭찬했던 것인데 우정의 가락이 성 안과 밖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으니 두 폭 그림이 지닌 뜻 더욱 간절하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