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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문지하 / 정체성 몸살, 자기 스토리의 완성

강철

얼굴 있는 풍경(96)

“미국에서 살아온 지 13년째다. 지금도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Where are you from?ʼ 이다. 이 질문은 생각보다 애매하다. 무작정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될것 같지만 그걸 묻는 게 아닐 때도 많다. 지금 어디에 살고 있냐는 질문도 되고 또 어떤 때는 남한이냐 북한이냐를 묻기도 한다. 해외에 한번이라도 나가본 경험이 있다면 무슨 말인지 알거다. 나는 이제 이런 물음에 대해 상황파악이 가능해졌고 이 사람이 뭘 알려고 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연습이 된 듯하다. 외지에 살면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남이 일깨워주고 심지어는 주변에 보이는 무심한 일상들까지도 그것을 알려준다. 또 내가 남을 보는 버릇도 그렇게 동화되어간다. 처음 보는 사람과 처음 보는 물건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파악하려는 습성이 생기는 걸 막을 길이 없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고 과일을 살때도 스티커의 출신국을 보게 된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내가 내 작업에 대해 아직도 묻고 있는 수많은 질문들이 이런 사소한 이야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내 자신에게 시원스레 대답을 못해 줄때가 많다. 그냥 국적을 안다고, 이름을 안다고 그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것처럼 내 그림들도 그 첫인상만 가지고 무심하게 보면 사실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여느 다른 작가들과 똑같이 작업의 개념과 그리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내가 왜 한지라는 종이와 아크릴 물감을 쓰는지, 내 작업은 “동양화”가 아닙니다 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지, 작업을 아주 크게도 하고 아주 작게도 하는지, 한 획에 그리기도하고 또 공들이기도 하는지 이 모든 게 ‘너는 어디서 왔니?ʼ 라는 질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 작가의 생각



다수는 언제나 소수를 공격한다. 유학생뿐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조차도 사춘기면 정체성에 대해서 심한 몸살을 앓는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외국인이 한국인에 둘러싸여 더 큰 공격을 당한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고 획일적인 풍토의 한국적 환경이 예술가에게 과연 유리할까?
역사적으로 위대한 문명은 전혀 다른 문명이 서로 만났을 때 꽃피운다. 엇비슷한 환경끼리 모여 있지 말고 이질적 환경을 체험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자신의 스토리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흐름을 만나면 대부분 주눅 들고 물들게 된다. 수많은 선진국 예술 유학이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이런 경우다. 주류의 흐름 앞에서 불안과 긴장과 고민을 극복하게 되면 예술가로서 큰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자기 스토리가 완성될수록 작업은 견고해진다.<- 문지하 작가는 2012년 2월 아라리오갤러리서울 삼청에서 2번째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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