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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고석민 / 상처의 균열, 거울의 한(恨)

강철


얼굴 있는 풍경(99)


“나는 어렸을 적에 제 옆에 있던 아이를 잘 살펴주지 못해 그 아이가 기차에 치이고 말았던 사건을 겪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차에 치인 그 아이를 보지도 않고 무서워 도망쳐버렸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꿈에 나타나곤 합니다. 그 아이를 명백히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 책임을 회피했던 자신에게 죄책의 채찍질을 해왔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기억은 저의 정신적인 부분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때 이후로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사회적으로 타당한 행동만을 스스로 강요해왔습니다. 스스로를 압박하고 폐쇄적으로 내재된 본연의 모습과 겉껍질의 모습의 괴리감은 자아를 파괴시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고, 숨기고, 혼자 있을 때 비로소 내 스스로에게 많은 자유를 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공간의 의미들은 퇴색되기 시작했고, 제가 생각하는 공간의 의미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지에서 보여주는 공간은 일반적인 구조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있어서 그런 공간의 의미들은 퇴색되어 버리고 그 공간 앞에서 거울을 들고 자연스럽게 섞여 있듯이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구조 아래 피하지 못한 저는 거울을 들고 숨어 있습니다. 사진에 나타난 거울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숨을 수 있는 피난처임과 동시에 저만의 공간이 됩니다. 바로 이 거울을 통해 나는 보호색 같이 또는 생략된 기호처럼 저의 존재를 암시합니다.” - 작가의 생각



할리우드 명배우들의 출신지가 그러하고, 성공한 예술가들 중 의외로 촌사람이 많다. 부족할 것 없는 거대 도시환경에서 넉넉하게 자란 모범생 예술가에게는 무언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드는 편인데, 그것을 우리는 ‘한(恨)’이라 부른다. 예술가에게 한이란 축복이자 과제이다. 일반인들은 도저히 풀지 못하는 이 공공의 숙제를 대신 해결해줄 때 큰 갈채를 보낸다. 절대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나 트라우마가 조금씩 아물어 예쁜 흉터가 되듯이, 뭐든지 좋게 되어 가려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작가에게 거울이란 이러한 시간을 위한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거울 시리즈가 끝나면, 한을 풀어내는 표현으로 어떤 형식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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