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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나영 / 미적훈련을 건너뛴 현대미술의 함정

강철

얼굴 있는 풍경(100)

 
“아름다운 풍경을 옮길수록 나의 화폭이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은 내가 잡고있는 붓을 더욱 자극시켰다. 그러나 옮기면 옮길수록 불만족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왜냐하면 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존재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바람, 햇빛, 소리, 나무…, 모든 것들이 매 순간 순간 쉼없이 어지럽게 변하고 있었다.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려 휘어졌고, 광합성을 위해 햇빛 쪽으로 뒤틀어져 있었고, 뿌리들은 단단한 땅에 어지럽게 뒤엉켜져 있었다. 그것은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고, 아름다움의 차원을 넘어선 무엇이었다. 그것은 ‘생(生)’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나무들이 한그루 한그루가 보이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고정된 일부분으로서의 나무가 아니라 각자 개개인의 생(生)으로서의 나무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나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을 쫓아다니지 않게 되었고, 사진기의 셔터를 마구 누르지 않게 되었고, 나무들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위안을 주었고 커다란 휴식을 주었다. 더이상 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옮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무들 각각 하나하나에 담긴 생(生)을 나의 화폭에 심고 싶다. 이제 겨우 눈을 떴고, 이제야 겨우 숲 속에 한걸음 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 작가의 생각
 


나영 작가는 미(美)에 대한 진지한 고민 끝에 마침내 ‘생(生)’이라는 키워드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는 순리(順理)라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의 진화 맥락에서 보자면, 오늘날 미(美)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은 촌스럽고 부질없는 노동으로 전락했다. 그래서인지 작가들은 이러한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더 상위적인 개념과 철학을 찾기에 골몰한다.

소위 성공했다는 현대미술은 기막힌 메시지를 동반하지만, 의외로 매력적이지 못한 형태로 대중에게 외면 받는다. 미적 훈련을 간과한 현대미술의 함정이다. 이는 마치 장난감을 갖고 놀던 유년기 시절과 이성(異性)때문에 고민했던 사춘기 과정을 겪지 않고, 바로 어른 행세를 하는 ‘불완전함’이라할까.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수준높은 지적 게임이라도 관객은 ‘미숙하고 온전하지 못한 열매’를 금방 눈치 챈다. 왜냐하면 감동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비록 뻔하고 저차원적 노동일지라도, 시각 예술가는 미(美)에 대해 고민하고 훈련하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엔지니어가 만든 자동차나, 건축가가 만든 공간과 경쟁할 수 있지 않을까.
 
- 나영 작가는 2012년 5월 미술공간현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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